#책[어금니 깨물기] by 김소연 #사랑을온전히보게하는방식 #마음산책 #hyemhyem
#책[어금니 깨물기]
책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어금니 깨물기', 언제 어금니를 깨물었나 생각하며 어느 한 때를 떠올렸다. 그 당시 난 심적으로 육적으로 너무나 바빠서 여유라는 걸 생각할 수 없었다.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사무적으로만 대하는 관계 속에서 외롭고 힘들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제목처럼 어금니를 꽉 깨무는 거였다. 꽉 힘주며 깨물면 이상하게도 참을만했고 이상하게도 더 할 수 있는 힘이 났다. 그렇게 6개월 버티다가 결국은 나가떨어졌지만. 어금니라도 깨물지 않았다면, 아마 진작에 버티지 못하고 깊은 동굴로 들어가 회복하기 어려운 시기를 더욱더 보냈을 것 같다.
이랬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책[어금니 깨물기]를 읽으며 저자가 깨물었을 그 순간순간을 나도 함께 따라 걸어갔다. 특히 가족에 대한 글이 많았는데, 가족을 생각할 때마다 복잡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피로 얽히고설킨 가족은 끊어낸다고 끊어낼 수 없는 하나의 줄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나 같기도 하다. 부모에게서 형제에게서 다른 친척에게서 영향을 받았기에 나의 한 부분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비중은 엄마가 많이 큰 것 같지만. 저자 또한 부모님에 대해, 특히 어머니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간 것을 보면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느껴진다. 원망, 그리움, 사랑, 안타까움 등등 어릴 때부터 돌아가신 후까지도 계속해서 남아있을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하고 떠오르는 건 당연하면서도 당연하지 않을까.
저자 김소연 작가님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어 찾아봤다. 알고보니 내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셨다. 그래서 였을까, 그가 이야기하는 어머니를 통해 내가 엄마에게 들었던 외할머니를 생각하게 했다. 사실 외할머니를 본 적도 없으며 엄마가 20대일 때 돌아가셨기에 엄마도 엄마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다고 하셨다. 늘 외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엄마와 딸로서 지내는 시간도 적었고 대화도 없었기에 그 부분이 너무나 아쉽다고 하셨다. 엄마와의 교감이 부족했음을 나의 엄마는 나에게 이야기했다. 어렸을 땐 엄마의 이야기, 엄마의 하소연이 무엇인지 몰라 이해하지 못하고 듣기만 했는데 나이가 점점 드니 이해가 되고 때론 엄마의 인생을 딸이 아닌 제삼자로 바라보게 되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딸이긴 하나 엄마의 인생을 딸로 보고 싶기보다는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그의 인생 속에서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엄마의 인생이 전부는 아니지만, 앞으로의 나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근거가 되진 않을까 싶다. 천천히 가족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회상할 수 있던 책이었다.
#기억에남는문장
여기 모인 글들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던 시간 속에서 썼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하여 한자리에 오래 웅크려 있었다. 자주 지쳤고 쉽게 엉망이 되었다. 그래도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열렬히 지키고 싶어 했다. 균형을 찾기 위해 자주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은 이를 악물고 가장 열심히 산 시간이라는 것을, 여기 모인 글들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 책머리에, 8p
나는 엄마를 보고 배웠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그걸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늘상 주먹을 쥐며 생각해왔다. 지키려는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겨우 얻게 된 것들과 꼭 얻고 싶었던 것들을 잘 지키는 것으로써 엄마처럼은 살지 않으려고 애를 써왔다.
- 엄마를 끝낸 엄마, 24p
할머니를 꿈에서 보면 나에게 좋은 일이 있다. 실제로 무슨 대단한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고, 내가 그렇게 여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던 식구가 꿈에 나타났을 때마다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그래야 홀연히 깼을 때에, 그리움을 조금 더 오래 순정한 마음으로 누릴 수가 있다.
- 등 돌림, 40p
할머니가 좋아했던 음식도, 할머니의 체취도, 할머니의 구부정한 자세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는데, 나는 할머니의 이름을 모른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할머니의 이름을 궁금해본 적이 없었거나, 언젠가 알게 되었을 텐데도 기억하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름을 몰랐기 때문에 꿈속에서 만나도 부를 수 없었던 것일까. 그래서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한 채로 꿈에서 깨버리는 것일까.
- 등 돌림, 42p
노력해서 얻게 되는 이해라기보다는 저절로 와닿아서 비로소 살아나는 이해. 어떤 경험을 들추어내어 어떤 이해를 소생시키고 싶은지를 언제고 골똘히 생각하는 나는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살아나게 할 수 있을 뿐, 할머니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너무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았다는 기억은 선연하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내가 든든해하는 것은 할머니라는 존재가 아니라 나의 기억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할머니의 이름이라도 알고 싶다
- 등 돌림, 43p
기차 소리는 분명한 단점이었지만, 그 동네에 이미 추억이 생겨버린 느낌이 들었다고. 잔상이 남아 마음을 접을 수가 없다며, 그 동네에서라면 훨씬 다정한 마음으로 평온하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했다. ~ 좋은 잔상을 남긴 동네라면 한 번쯤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사를 결정하는 데에 동원된, 친구만의 그 사소한 잣대에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친구만의 독특함이 파생시킨 선택들로, 친구의 특별한 인생이 새롭게 펼쳐질 수 있었으면 해서였다.
- 조금 다르기, 51p
나는 언젠가부터 조금 다른 나의 의견과 일상과 나만의 발견은 그런 공간에 전시하지 않게 되었다. 모두들, 조금 다른 각자의 의견은 어딘가에 꽁꽁 숨겨두고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알리는 듯하지만, 그만큼 각자의 비밀은 비대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 조금 다르기, 53p
내일은 위해서 이제 자야지, 하고 생각하면 아기가 아니라고. 그런 아이들에게 내일이 있다는 것을, 내일이 곧 오늘처럼 이곳으로 오리라는 것을 가장 평화로운 방식으로 설득하는 일이 자장가를 불러주는 일이라 했다. 자장가 속에 담긴 야릇하고 평온한 약속에 기대어 아이들은 애써 붙잡고 있던 오늘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스르르 잠이 든다. 약속에 기대는 한, 아이에겐 기도가 필요 없다. 그렇게 기도가 무용해지도록, 기도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일, 그게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 기도를 잠시 멎게 하기, 81p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내 입으로도 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눈에 띄지 않은 어른들을 둘러보면, 거기서 존경할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어딘가에서, 우리가 눈길을 자주 줄 리 없는 어떤 일을 평생을 바쳐-바친다는 마음도 품지 않은 채로 그저 스스럼없이 묵묵하게-하고 있는 이들. 그들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고 느낀다는 것은, 내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를 - 누구를 안 보고 있는지를 - 증명하는, 고작 그 정도의 말일뿐이다. 보는 태도 때문에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쉽고 어리석다. 아니, 본다는 것은 쉽고 어리석다. 살아가면서 이런 유의 어리석음을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혼이 없는 사람일 것 같다. 영혼에 대해 따로 생각할 이유가 없을 만큼의, 오로지 영혼인 사람일 것 같다.
- 나를 애태우는 '무', 86p
"아버지가 무능해서 싫어." 무능하다는 건 엄마의 견해였다. 그런 남편을 둔 것이 고달파서 어린 딸들을 앉혀놓고 엄마는 푸념했고 딸들은 엄마에게 해석된 아버지를 아버지라 믿었다. 책임감이 없는. 아버지답지 못한.
- 한결 같은 무능, 105p
"도미노 게임처럼 소중한 걸 너무 가까이 두지 마라. 하나가 무너져도 연쇄적으로 무너지진 않도록 조금 멀리 두어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해준 말 중에 큰 딸이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말이다. 못 하나를 박아도 허술하게 박아서 무언가를 매달면 얼마 가지 않아 떨어지고 부서지게 했던 그였으므로, 현자 같은 그 말은 딸에게 유머에 가까웠다.
- 한결 같은 무능, 110p
사라 폴리는 엄마를 재구성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이 쓰나미 같았다고 고백했지만, 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에 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일을 행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그녀가 부러웠다. 엄마를 엄마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 이해였기 때문에 더더욱 부러웠다.- 모든 이의 시점, 117p
도망을 치고 있는 건지 잘 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건지 구분할 수는 없지만, 아등바등하느라 무엇에 대하여 아등바등하고 있는지조차 망각한 채로 이상한 맹목에 휩싸이다 홀연히 맹목으로부터 풀려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의 나는 포기한 사람이 아니었다. 좌절감이 아니라 담대함과 호방함이 순일하게 차올랐던 황홀한 순간이었다.- 아등바등의 다음 스텝, 149p
흉터에 대해서 우리가 쉽게 관심을 갖고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피부에 새겨진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눈에 보인다는 점과 단박에 설명 가능할 사연이 존재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음에 새겨진 흉터에 대해서는......- 피부 뜯기, 104p
그나마 진심을 담아 고르는 단어는 '평화'다. 평화롭게 지내시라는 말이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바람직한 안부 같아서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식상하고 뻔한 인사말일 확률이 높겠지만, 그 사람을 위해 꼭 그 말을 건네고 싶어 진다.- 평화롭게, 209p
시끄러움과 심란함도 그리하여 누군가에게 종내는 위로가 된다. 우리는 평화롭기를 갈망하지만, 평화는 찰나처럼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잠시 안아주고 떠나버린다.- 평화롭게, 212p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엄마의 서사를 내가 엿본 적이 없고, 엄마도 내가 질문을 건넸을 때에만 짤막하게 들려주는 정도가 다였다. 내가 엄마를 헤아리는 마음은 원초적일 뿐, 서글프리만치 앙상했다. 어떤 꿈이 있었는지. 실재하는 삶과 어느 만큼이나 괴리가 있는지. 놓쳐버린 것과 비켜간 것이 무엇인지. 열망하던 것과 품어온 것이 어떻게 변해버렸는지. 자식으로서 내가 무엇을 더 헤아려야 하는지. 나는 헤아려야 한다는 당위와 딸이라는 원초적인 감정이 뒤범벅이 된 채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편지 두 상자, 2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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