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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Book Review : 책 [내밀 예찬]

by hyemhyem 2022. 8. 24.

#책[내밀 예찬] by 김지선 #은둔과거리를사랑하는어느내향인의소소한기록 #한겨레출판 #hyemhyem

 

 

#책[내밀 예찬]

 

  쓰기에 앞서서 고백하자면, 난 MBTI 신봉자였다.(?) 과거형이긴 하지만 한참 유행을 탈 때 검사한 결과 난 INFP로 나왔고 설명이 나에게 찰떡이었다. 그 뒤로 다른 성향은 관심이 없고 오직 INFP 설명은 진실이라고 내 속에서 못 박아놓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야기했다는,,, 한때 신봉자로 스스로를 이야기했다. 유행이 어느 정도 지난 이후에도 INFP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생각한다. 지금도. 이렇게 내 성향이나 성격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는 마음보다 설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MBTI의 등장 덕분이다. 왜냐하면 난 내 성격을 굉장히 싫어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로 거슬려 올라가 보면 나의 내성적인 성격을 마주하는 몇몇의 기억들과 친구 관계들 등을 돌아봤을 때, 활발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스스로 부끄러워했으며 활발한 친구들이 너무 너무나 부러웠다. 소위 '인싸' 들이 굉장히 부러웠다. 자신만의 매력을 주위에 발산해 내 주위가 사람들로 둘러싸게 되고 관심받는 그 모습이 나에게 빛나는 별 같다고 할까나. 내가 원하는 이상향의 모습과 현실의 내 모습의 간극이 너무 커서 더더욱이 내 성격을 싫어하고 증오하게 된 것이라 지금은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성인이 되고 나서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내 성격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해하고 나니 내 행동이나 과거의 경험들, 감정을 받아들이고 껴안고 살아가기로 생각했다. 그리고 남들과의 비교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지 말자고 다짐하게 되었다는 나의 이야기이다. 이처럼 내향적인, 내성적인 성격이 사회에서 주는 이미지에 더해 스스로도 싫어했던 내 성격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굉장한 과정과 시간과 경험과 성찰이 들어갔다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책[내일 예찬]을 읽으며 나와는 비슷하지만 다른 내향인이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들여다 보는 듯했다. 책의 부제목인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어느 내향인의 소소한 기록'은 우리가 '내향적인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다르게 볼 수 있게 이야기한다. 각 일화는 나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일상생활 속에서의 관계, 직업에서의 관계 등등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 속에 나의 성향과 성격이 묻어 나오고 드러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저자가 은둔과 거리 두기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자신이 가진 성향을 솔직하게 글로 표현해 읽는 내향적인 나에게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아마도 나도 내향형이지만 솔직하게 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직은 힘들고 내 마음속 정해진 선까지만 드러내고 싶어 하기에 저자의 솔직함에 충격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내밀한 속을 글로 나타는 <내밀 예찬>이라는 책 제목도 마음에 든다. 책 뒷 표지에 '내밀함이란 나만의 고유한 세계가 있음을 이해하고  각자가 원하는 정도와 방식으로 서로의 세계에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나와있다. 난 이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각자의 고유한 세계가 있다는 것, 각자마다 가진 성향과 성격과 배경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 이해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각자의 방식과 정도로 서로 연결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복잡하고 때론 고독하기까지 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존중해주는 말이라고 느껴진다. 각자의 고유한 세계를 인정하는 것, 먼저 인정하고 이해해야 나 또한 인정받고 이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가 되기를 오늘도 연습해본다.

 

  기억에 남는 문장이 많았지만, 다시금 살펴보면서 한 문장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2부에서 '간장 종지 크기의 사랑' 를 읽으며 떠올랐던 사람이 있으니, 바로 나의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나와 닮으면서도 다른 사람이다. 어릴 땐 내 얼굴을 보면 항상 어른들은 아버지를 닮았다고 이야기해주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내가 아빠를 닮았나? 잘 모르겠는데.' 하면서 의아해했다. 그래도 육적인 아버지이니 닮을 수밖에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이후,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에 대해 알아가면서 나는 나의 성격이 아버지의 성격을 물려받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극히 내향적인 이 성격이 어디서 왔을까 괴로워하며 혐오했던 내 성격이 아버지의 성격과 비슷하다는 걸 깨닫고 나선 잠깐, 아니 많이 충격을 받았다. 자식의 입장으로 아버지를 바라볼 때, 아버지는 말이 참 없으시다. 뭔가, 과묵하다는 것과는 다르게 대화하기 어려운 상대랄까. 아버지와의 대화 시도를 해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음... 아빠랑 대화하기 참 어렵군. 감정이 들어간 대화를 하기가 어려운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곤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아버지의 행동과 말에 대해 자식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흉보기도 했었다. '아빠의 가슴은 간장 종지 크기의 그릇은 아닐까.'라고,,, 다시 생각해보니 아버지께 죄송하다. 자식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이 책을 다시금 읽어보니, 나만이 내향인이 아닐 텐데 우리 아버지도 내향인 확률이 큰데 아버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아닌 한 사람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나와는 달랐던 건 아닐까. 그 방식도 정도도 말이다. 나만 이해받기를 생각하고 나의 기준에 차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을 평가했던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누군가에게는 큰 사랑의 표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간장 종지 그릇 정도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난 나에게 깊은 반성을 하게 된다. 앞으론 그렇게 판단하지 말아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기억에남는문장

 

 

1부 내밀 예찬

 

사정이 뭐가 됐든, 사라지는 사람들은 홀로 있는 시간을 해독제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일과의 한 복판에 잠시 호흡을 고를 수 있는 여백을 만든 사람들이다.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단체생활에서 자유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사람들이다. 일과 중 1시간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에너지를 비축할 회복 환경을 구축한 사람들이다.

- 점심 이탈자, 19p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안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 채 희생과 폭력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모든 사람은 어찌해야 어찌할 수 없이 크고 작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내밀 예찬, 24p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그다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주제는 주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들과 관련이 있다. ~ 입 밖으로 꺼내면 참으로 별것 아니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들을 휘발시키거나 훼손하지 않고 온전히 보관하려면 나만의 비밀로 남겨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완전무결한 비밀이 있다는 것은 삶을 안전하고도 신비롭게 만들어준다.

- 내밀 예찬, 25p

 

시간 많음, 목표 없음,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무용하고 비생산적이며 널널한 취미 활동의 세계. 자애로운 사군자 교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이유는 없어도 좋아요. 한번 해볼까, 그거면 충분해요. 언제든 그만두면 되는 거예요. 취미라는 게 그래서 좋은 거랍니다. 포기해도 상처가 없지."

- 말과 시간의 연주자들, 37p

 

유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이들이 시간을 보내는 법을 눈여겨본다. 어쩌면 영원히 퇴직자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닌 시간을 살아갈 수도 있는 우리들의 삶에도 힌트를 주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 말과 시간의 연주자들, 38p

 

자신이 웃고 싶을 때만 웃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힘이다. '웃지 않음'으로 인해 한 개인의 튼튼한 성채가 만들어지며, 이는 세상이 그를 만만하게 대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방어막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들 알다싶이 숨 쉬듯 굴복하게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 낄낄의 중요성, 59p

 

 


2부 숨고 싶지만 돈은 벌어야겠고

 

우선 나 스스로도 '나는 ~한 사람이다'라는 제대로 된 정의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 무슨 수로 타인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며 나라는 브랜드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정의를 내릴 수 없을 정도록 다채로운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나라는 사람, 나다운 것, 소위 말하는 '자아'라는 것에 관심이 옅어졌기 때문이다. 스스로 내향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죽어도 못 하는 것은 없으며, 받아들여줄 것 같은 사람에게만 본심을 털어놓는, 즉 발 디딜 곳을 보고 발을 뻗는 사람 정도로 나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모습이 있고 한편으로는 저러한 모습도 있는 사람들의 의외성이 흥미로우며, 본성에 맞지 않는 일을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 숨고 싶지만 돈은 벌어야겠고, 67p

 

내가 가진 사랑의 총량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열 자식은 거뜬히 거둬 먹이는, 퍼도 퍼도 솟아오르는, 무한한 어머니의 사랑은 환상이 아닐까? 쉽게 지치고 인내심은 곧장 바닥이 나고 하루 종일 허덕이다가 잠시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간신히 찰박하게 차오르는 사랑도 있지 않을까? 자기애로 충만한 모성도 모성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어떤 사람의 그릇은 간장 종지 크기가 아닐까?

- 간장 종지 크기의 사랑, 77p

 

새삼스레 나라는 사람의 지정학적 위치를 생각해본다. 이웃이라는 생경한 존재는 평상시에 지겹게 생각하는 나의 우주가 아닌 타인의 우주를 떠올리게 한다. 이 세계는 결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진실도 상기시킨다. 내가 아닌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비로소 지켜지는 세계가 있다.

- 이웃이라는 낯선 존재, 95p

 

그것은 정확히 각자가 가진 예민함만큼의 거리일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사회에서 피곤하고 유별나며 까탈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던, 그리하여 억누르고 참아 넘기는 것으로 대체되었던 그 감각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절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의 경계를 예민하게 설정할 수 있는 사람만이 최소한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다. 더불어 생존에도 유리할지도 모른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식으로 말하자면 '예민한 것이 살아남는다' 정도가 될까.

- 예민한 것이 살아남는다, 99p

 

유행은 바뀌고 유행을 둘러싼 풍경은 금세 변한다. 그런데 몸에 아로새겨진 감각은 잘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유행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리게 된 것은 나의 두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감각일 것이다. 사물을, 공간을, 세상을 피상적으로 보는 대신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적절한 거리와 여백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시시때때로 나와 세상 사이의 공간에 카메라를 끼워 넣는다. 나의 아름다운 한때를 타인으로 하여금 발견되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스로를 주체가 아닌 객체로, 그러니까 타인의 구경거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타인은 나의 아름다운 한때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맛있고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을 경험하는 순수한 즐거움을 100퍼센트 만끽하지 못한 나만 손해다. 손해는 손해다로 보면서 점점 시력만 나빠지는 기분이 든다. 좀 더 맑고 또렷한 눈으로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거울이 다른 거울을 들여다볼 때, 104p

 

함께 일을 하다 보면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게 모르게 공유하게 된다. 함께 세운 목표와 일에 임하는 태도, 그로 인한 잔잔하고도 격렬한 감정을 나누다 보면, 단순하 친목도모 모임에서는 얻기 어려운 유대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 이메일을 보내며, 109p

 

 


3부 잃어버린 정적을 찾아서

 

물론 어른이 된다고 해서 타인들 속에서 나의 자리를 찾는 일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비대한 자의식과 현실의 내가 가진 미숙함 사이의 불균형도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는다. 어른의 시간에도 가끔 3월 2일이 찾아온다. ~낯선 환경에 떨어진 어른은 간혹 울고 싶어 지며, 한참 연약한 상태일 때 들려오는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기 때문이다.

- 3월 2일의 마음, 126p

 

나는 오래 보아도 알 듯 말 듯한 깍쟁이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온전히 선하기만 한 사람도, 악하기만 한 사람도 없듯이 여러 가지 충돌하는 면을 지니고 있고, 가끔은 자신이 한 말을 뒤엎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복잡성을 관찰하는 일이 흥미롭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단순하지 않은 아이러니를 품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언어가 필요할 때가 있고, 그들이라면 그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언어가 지닌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찬찬히 곱씹으려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필수적이니, 너무 발 동동 구르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언제든지 나의 삶에 각색, 은둔, 은유의 자리를 남겨두었으면 한다. 그것은 아마도 예술의 영역일 것이다.

 

문화가 발전할수록 세부 사항들이 정교해질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주로 인터넷상의 어떤 언어를 발견할 때다. 복잡한 상황을 대강 요약하고, 타인의 사정을 거칠게 판단하거나 훈수를 두고, 유명인에게 '솔직 고백' '솔직 해명'을 요구하는 사회에는 투박하고 게으르다. 좀처럼 이해가 안 되는 사안에 촘촘하게 얽힌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 보고, 어떤 것들은 보고도 그냥 지나치며,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을 조금 더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려고 애쓰는 것이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최선의 솔직함이 아닐까.

- 최선의 솔직함, 136p

 

그 누구도 일에 몸과 마음을 갈아 넣으라거나, 양질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하라고 말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어차피 매일같이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긍심, 반복되는 노동을 통해 만들어내는 나만의 세계,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없다면 꽤나 견디기 힘들어진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장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업적이나 질 높은 결과물, 타인의 평가를 위해서가 아니다. 하루 중 상당 시간을 그 안에 머물러 있어도 괜찮은, 가끔은 즐겁기까지 한 자신만의 성채를 지키기 위해서다.

- 일 머리가 없다는 말, 1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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