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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Book Review : 책 [소설 보다 : 봄]

by hyemhyem 2022. 8. 25.

#책[소설 보다 : 봄] by 김병운, 위수정, 이주혜 #문학과지성사출판사 #hyemhyem


#책[소설 보다 : 봄]

  사계절 중 어떤 계절을 좋아하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난 여름과 가을을 좋아한다고 답할 것이다. 어두운 날씨보다 쨍한 하늘을 가진 밝은 날씨를 보기 좋아하고 하늘이 깨끗하고 때론 노을 져 한 편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이는 하늘을 좋아한다. 때론, 여름마다 더위를 먹어 고생하기도 하고 가을엔 너무 먹어 살이 포동포동 찌는 걸 확인하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봄을 선호한다고 말할 순 없지만 봄마다 피는 벚꽃과 이름 모를 풀들은 바라만 봐도 기분이 흐뭇해진다. 그리고 따뜻해지려고 하는 햇빛이 나를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주면서 생명력을 충천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전보다 빨리 봄이 사라진다는 현상은 슬프기도 하다.

  이처럼 내가 느끼는 봄의 느낌처럼 책 <소설보다 : 봄>에 실린 단편 소설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 당시 했던 말, 행동, 느낌, 기분 등을 각 소설의 주인공들은 과거로 돌아가 본다. ‘윤광호’ 에선 과거에 만났던 윤광호라는 남자를 기억하며 ‘아무도’ 에선 그 남자를 떠올리며,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에선 일본 출장을 떠올리며. 각자 기억하는 인물과 상황은 다르지만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와 만난 그들을 떠올리며 정리하고 앞으로를 기약한다는 점에서 3 단편 소설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부고, 결혼 생활 중 만나게 된 문제들, 회사에서의 소문 등 등장하는 일상은 우리 주변에 흔히 보이는 일들이며 그 가운데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넣어 읽으면서 평범하게 다가오는 게 그 사이 느껴지는 이 감정은 평범치 않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무슨 말 하는지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이해를 할까 싶지만, 나의 부족한 표현방식이라고 이해해주기를…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권유한다.

  3 단편 소설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생각에 잠겼던 소설은 <윤광호>였다. 몇 해 전부터 문학계에서 성소수자를 소재로 한 소설이 급부상하는 것을 뒤늦게 알았고, 몇 개의 책을 읽었다. 사실 내 주변 지인들 중에 없었기에 책을 보면서 다는 아니지만,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금도 유튜브나 다른 매체에 활동하는 성소수자 분들을 이젠 전보다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간 만들어진 선입견이 아니라 직접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니 그들에게 써졌던 이미지가 옅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소설 <윤광호>에서도 화자와 윤광호가 내기를 한다. 이후 이 내기는 광호 씨가 부고한 이후 화자가 광호 씨가 어떤 사람이었는 지를 돌아보며 마지막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속에서 이 내기를 꺼낸다. 그 대목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지금은 죽어도 안될 것 같고 비참한 결과만 맞이할 것이라는 현실 가운데 중요한 건 용기가 아니라 시간이라 말했던 광호 씨의 말이 머릿속에 남는다. 비단, 성소수자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소수자, 어느 누구에게도 해당되는 듯하다. 어느 책에서 이런 말을 읽었다. ‘소수자가 없는 그 사회 속에서 같이 살아가고 싶다’ 나도 이 같은 사회 속에서 살고 싶다. 누군가는 유토피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를 소수자로 만들고 선 긋기보다 선을 지우고 손 잡고 강강술래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기억에남는문장

< 윤광호 ㅣ 김병운 >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자 기자를 지망했으나 국내에 현존하는 거의 모든 공채에서 낙방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건 나랑 안 맞는구나 싶었고, 그렇다면 나랑 맞는 건 무엇이며 내가 진짜로 쓰고 싶은 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소설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소설 때문에 인생이 크게 휘청인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나 역시 언제가 소설가의 꿈을 간직한 채 습작생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 13p

남들과는 다른 욕망을 지녔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신체에 수치심과 모멸감을 적립해온 사람이라면, 반복되는 혼란과 부정 속에서도 기어코 규범을 거스르는 쾌락 쪽으로 향하는 자신에게 진저리 쳐본 사람이라면, 제아무리 벽장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한들 이 소설에서 자신의 어떤 시절을 겹쳐보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까.
- 33p

나는 그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던 광호 씨의 말을 자주 곱씹는다. 어쩌면 그 말은 나를 향한 충고나 조언이 아니라 다가올 세상을 향한 기대와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바람을 안고서.
- 35p

이런 죽음과 그런 죽음이 과연 다를까요?
네?
비약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광호 씨의 죽음을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아요. 활동가로 산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건 아니잖아요. 앞에 서 있다는 이유로 당연한 것처럼 신변을 위협당하고 의무적으로 조롱을 감내해야 하는데, 최소한의 규제조차 없어 숨 쉬는 공기마다 노골적인 증오와 모욕과 낙인이 독성 물질처럼 부유하는데…… 어떻게 몸도 마음도 건강할 수가 있겠어요. 그건 아무리 뱉어내고 씻어내도 얇게 핀 곰팡이처럼 계속 살아남아 온몸 구석구석 스며들어요. 괜찮은 사람도 괜찮을 수가 없다고요.
- 38p


< 아무도 ㅣ 위수정 >

친구를 만나지 않은 지도 꽤 되었다. 그들의 물음에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제대로 된 말이라는 걸 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말을 제대로 할 자신이 없었다는 편이 더 맞는 말이겠지.
- 60p

어떤 마음은 없는 듯, 죽이고 사는 게 어른인 거지. 그렇지? 그런데 어째서 당신들은 미래가 당연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건가?
- 88p


<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ㅣ 이주혜 >

마취 상태로 의료진에게 둘러싸인 내 몸은 낯설었다. 잠든 모습 같지도 않았고 기절한 모습 같지도 않았다. 물론 잠든 내 모습이나 기절한 내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정확한 비교는 아니다. 저건 뭐랄까. 쓸모를 유예당한 빈자리 같달까. 확실히 쓰레기통에 처박히지는 않았지만, 나중을 기약하며 챙김을 받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창고 한구석에 방치된 빈 자루.
- 109p

틋.
픗.
귀 기울이면 들렸다. 통나무가 마르면서 깊은 속살 어딘가가 미세하게 비틀리는 소리. 습기가 빠져나가면서 빈자리가 틀어지는 소리. 예측 불가한 그 소시를 사장은 나무가 익어가는 소리라고 했다.
- 1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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