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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Book Review : 책 [더티 워크]

by hyemhyem 2023. 12. 21.
책 [더티 워크]

 

 

  옛날엔 착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피해 보는 일이 발생할 때, 괜찮다고 넘어가며 도리어 상대방을 위해주는 게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점점 시간이 지나, 여러 사람을 부딪히고 여러 사건을 듣게 되면서 좋게 넘기는 것만이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착하다고 해서 모두 좋은 사람이 될 수 없고, 착하지 않다고 해서 모두 나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나이를 먹으면서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좋음과 나쁨을 나누는 기준을 정하는 선 또한, 독단적으로 정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단순히 나쁜 것과 좋은 것을 나눌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것, 점차 내가 속한 현실을 앞으로도 살아갈 세상을 그나마 마음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갖게 되어서 개인적으로 다행이라 느낀다. 모르고 살았다면, 좀 더 단순한 성격으로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살았을 텐데 알게 되어서 나는 좀 더 복잡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좋음과 나쁨, 선과 악, 깨끗함과 더러움을 가르는 그 기준이 나에게 점차 흐려져 경계가 애매하게 되었을 때 좀 더 나은 생각과 선택으로 이해와 공감으로 내가 살아가기를 바란다. 안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책 [더티 워크]는 미국 사회에서 더럽고 비윤리적인 일들을 하는 사람과 그 직업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러한 인식을 갖게 되었는지 등 해당 노동자들의 인터뷰와 여러 연구들을 인용하며 적은 르포(?) 형식의 글이다. 사례가 미국 사회라는 점에서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되려 한국 사회에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어서 공감할 수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작가가 조사하고자 하는 직업에 실제로 종사하는 노동자를 인터뷰 함으로써 그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인사이트가 매 파트마다 들어있다는 점, 한 가지 관점이 아닌 여러 관점에서 살펴 해당 직업의 탄생과 인식이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발생했다는 점, 마지막은 더티 워크와 관련 노동자들과 약간의 연대(?)할 수 있는 생각을 던져준 점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 책 속의 직업이 미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 한국만 생각해도 떠오르는 더티 워크가 있다. 직업의 귀천과 그에 따른 연봉을 참으로 중요시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서 선량한 시민들이 더티 워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끔 해주어서 마음속으로만 그 말을 삼킨다. 단순히 귀하고 천한 직업뿐만 아니라 그 직업을 갖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환경도 개선되어야 한다는 걸, 한 번 세게 생각해 주는 기회를 이 책을 통해서 경험해 보시는 게 어떤지. 그리고 이들에게 지어준 책임을 함께 나눠주면 좋겠지만, 거기까진 힘들 수도 있으니 생각이라도 다르게 할 수 있는 건 어떨까.

 

 

기억에 남는 문장

 

 

들어가며

 

선량한 사람들은 비윤리적인 행위를 대리인에게 위임한 뒤 책임을 편리하게 회피한다. 더러운 일을 떠맡은 사람들은 무슨 불량배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무의식적 위임'을 받은 이들이다.

_18p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티 워크를 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가난한 사람일수록 사회의 '썩은 사과'라고 비난받을 가능성이 크다. 윗사람들이 오랫동안 용인하고 심지어 장려하기까지 한 제도적 폭력이 어쩌다 폭로될 때면 흔히 더티 워커들이 끌려 나와 손가락질받는다.

_27p

 

Part 1. 교도소 담장 안에서

 

재소자를 학대하는 교도관은 에버렛 휴스가 1962년에 말한 바로 그 일, 즉 사회의 더티 워크를 떠맡은 사람이다. 휴스는 이렇게 썼다. "때때로 우리는 교도소나 구치소의 죄수들에게 잔혹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풍문을 듣는다." 그런 행동에 대해 교도관을 비난하고 싶은 충동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교도관은 사실 "우리의 대리인"일 뿐이다. 대다수의 국민이 느끼기에, 교도관이 집행하는 처벌은 사회의 '외집단'인 범죄자들이 "선량한 사람들로 구성된 내집단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하는 처벌"이다. 그 처벌이 "우리가 생각하고 싶어 하는 정도를 넘어설 때는 좀 나쁜 것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양가적이다."

_90p

 

"낙인찍힌 장소는 낙인찍힌 시설을 더 많이 '요구'한다. 그 지역사회의 낙인이 해당 시설의 낙인에 버금가거나 오히려 강력한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교도소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가장 큰 시골 소도시는 시골성, 인종, 지역, 비곤이라는 사중의 낙인을 짊어진다.

_107p

 

갈런드는 "일상적인 폭력과 고통은 은밀하게 수행되거나 위장되거나 어떤 식으로든 시야에서 제거되면 용인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잔인성의 정도가 아니라 잔인성의 가시성과 형식이다. 이 관점에서 바라보면 플로리다 주립 교도소들의 외딴 위치는 우연이 아니다. 프래트에 따르면 서양 세계 전역에서 "문명화된 감옥은 보이지 않는 감옥"이다. 시스템의 폭력을 은폐함으로써 '선량한 사람들'이 담장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훨씬 더 쉽게 모르는 척하거나 잊을 수 있게 하는 감옥이 문명화된 감옥이다.

_141p

 

Part 2. 드론 화면 너머

 

그러므로 도더적 외상은 "근본까지 닿아 있는 도덕적 신념을 위배하는 행위를 스스로 행하거나 막지 못하거나 목격하는 일"과 관계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산업재해다. 더티 워크를 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이러한 산업재해를 당한다.

_195p

 

교육받을 기회와 일자리가 비교적 평등하게 주어지는 사회에서는 경제적 곤경이 누가 군인이 되는가를 강제로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럭저럭 괜찮은 여러 일자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야 유급 복무라는 선택지가 그 사람의 제한된 선택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선호를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샌델은 주장한다. 이어 그는 한국전쟁 귀환병이자 연방 하원의원인 찰스 랭글이 이라크 전쟁에 징병제를 재도입하자고 주장한 신문 사설을 인용한다. 랭글에 따르면, 불균형하게 많은 저소득층과 소수인종이 입대 상여금과 교육 기회에 끌려 군인이 된다. 랭글에 따르면 뉴욕시의 "자원병 중 70퍼센트가 저소득층에 속하는 흑인 또는 라틴계였다."

_234p

 

그런데 만약 사회가 귀 기울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전쟁의 진실을 전하는데도 듣는 사람이 의심부터 하거나 금세 화제를 바꾼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치러지는 전쟁에 대해서조차 휴스가 말한 "알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언론과 인권운동가들이 드론 전투에 대해 가장 자주 비판하는 지점은 시민이 알고 싶어도 알 수 없게 진실을 가리는 그 불투명성이다.

_260p

 

 

Part 3. 도살장에서 벌어지는 이들

 

이 역학에 주목한 경제학자 필립 마틴은 채소 수확, 호텔 객실 청소 같은 틈새 노동시장에 이주민이 진입하면 그러잖아도 힘든 노동이 더욱 힘들어지고 본토인에겐 더더욱 매력 없는 노동, 더티 워크가 된다고 분석했다. "이주자를 고용할 수 있는 한 고용주는 더러운 일을 개선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리하여 미국인은 더러운 일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고분고분한 외국인에게 대체될까 두려워하는 본토박이 저숙련 노동자들의 계급 불안과 인종차별이 뒤섞여, 이주민들은 사회적 더러움을 획득한다.

_284p

 

더티 워크 중에는 침체되고 척박한 시골 지역 주민이 주로 담당하는 노동이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많은 교도소가 '시골 게토'에 있다. 이와 달리 도축 노동은 외국인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그림자 인간'의 노동은 미국인의 식량 체계와 식단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_292p

 

이 먼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이자 심미적인 거리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스테이크와 닭다리는 이 시스템의 잔인성을 감추는 무색무취의 포장재에 들어 있다. 뼈가 없는 햄버거 패티, 빵가루를 입힌 치킷너겟 같은 식품은 아예 고기로도 보이지 않아서 그것을 만드느라 동물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쉽게 잊을 수 있다.
_325p

 

이 대화를 보면 윤리적인 식생활을 추구하는 많은 이가 왜 노동자 복지보다도 식량 생산 체계 내의 동물 복지에 훨씬 더 민감한 모습을 보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방목' '인도적 환경인증' 같은 라벨이 붙은 고기를 구입하는 데는 진심이지만, 그런 라벨에 노동자에 관한 정보는 나와 있지 않다. 이 대화는 윤리적 소비의 한계도 분명히 보여준다. 윤리적 소비는 정치의 문제를 개인의 자기 만족감을 최우선시하는 시장 거래로 환원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될 때 개인은 자신의 건강에, 그리고 특정한 종류의 순수, 즉 항생제를 투여한 고기를 먹지 않는 순수한 상태, 식탁과 몸에서 가공식품을 추방한 순수한 상태에 관심을 쏟지, 적정 임금이나 노동자 혹사에 대해서는 무심한 경향이 있다.

_358p

 

Part 4. 현대 사회의 뒤편으로

 

트랜스오션과 비피 모두 사고 생존자를 인격적으로 대해야 할 인간이 아니라 법적으로 책임져야 할지도 모르니 미리 단속해야 하는 문젯거리로 취급한다는 것을 스티븐은 점점 깨닫게 되었다. 석유산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기업이 그런 식으로 나올 것을 예상했겠지만, 스티븐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트랜스오션의 일자리에 지원했을 때 그는 시추선 일의 위험성을 잘 알았던 동시에 기업들이 노동자를 최대한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다.

_377p

 

성공한 화이트칼라 전문직이 권력이 있다고 해서 도덕적 비난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력이 있는 한 이 비난은 훨씬 덜 뼈아프고 훨씬 덜 파괴적이어서 그들의 소득에, 위상에, 존엄성과 자존감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_439p

 

 

나가며

 

사회질서를 이루는 대부분의 요소가 그렇듯 더티 워크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티 워크는 법과 정책의 산물이요, 예산 편성의 산물이며, 그 밖에 우리의 가치와 우선순위에 따라 우리가 집단적으로 내리는 여러 결정의 산물이다. 그런 결정 중 하나는, 더티 워크가 무고한 사람들과 환경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막대한 위해를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다.

_458p

 

모든 더티 워커에게 전해야 할 바로 그 메시지다. "우리가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만행이 벌어질 수 있는 곳에 보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책임을 함께합니다. 당신이 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당신이 하지 못한 모든 일에 대해 우리가 함께 책임집니다."

_46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