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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랑의 이해]
#이혁진 #민음사
어떤 사람을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어떤 부분을 이야기해야 쉬운 설명이 될까? 난 그 부분을 그 사람의 성격, 성향이라고 생각했다. 가령, 엄마와 아빠에 대해 대화할 때 나오는 단어가 있다. '사람은 참 착해.' 이 말은 고정 mc로 맨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난 '착하다'는 이 말에 수많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순수하면서 착해, 눈치가 없는데 착해.' 등등. 착하긴 한데 어떤 착함인지를 설명해주는 많은 성격과 성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착함'은 때론 하나로 보이는 성격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양한 종류로 '착함'은 나눠진다, 내 눈엔 그렇게 보인다. 성격도 이렇게 보이는데, '사랑' 이라는 감정은 또 얼마나 다양하게 존재할까. 사랑도 수 많은 종류로 나눠지면서 일생동안에 느끼는 감정이지 않을까. 많고 많은 사랑 중,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랑이 있다. 모태솔로이기에 연인을 향한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기에 궁금하다. 만약 내가 사랑을 한다면, 연애를 한다면 그때 느낄 수 있는 사랑은 어떤 감정일까? 간접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수 많은 연애 프로그램이 있다만, 직접 피부로 겪은 일이 아니기에 '이렇지 않을까?' 하며 지레짐작할 뿐이다. 한 연애 프로그램에서 사연자의 연애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해 봤다. 이 연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끊을 수 없는 이유는 뭘까, 나에게 해롭다는 걸 머리론 알지만 마음으로 끊어낼 수 없는 감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사랑과 감기는 숨길 수 없다.'는 말이 이 물음에 생각이 난다. 어쩔 수 없는 마음, 스스로도 어떻게 조절할 수 없는 감정 그렇기에 한 번 걸리면 눈에 콩깍지까지 씌어 인정사정 보는 것 없이 만드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거대하게 느껴진다.
이렇듯, 책 [사랑의 이해]는 사랑을 '이해'하고, 관계의 '이해' 속에서 갇혀버린 사랑을 이야기한다. 배경은 은행, 네 명의 남녀가 사내 연애를 하며 만들어지는 관계를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수영과 상수가 각자의 연애를 통해 느끼는 사랑을 이해하는 과정은 현실적으로 다가와 읽는 이의 피부를 서늘하게 만든다. 더불어 종현과 미경, 이 네 명 사이에 눈에 보이진 않지만 존재하는 '급'이 일상생활 속에서 잘 드러나고 이 때문에 느껴지는 또 다른 '이해(이익과 손해)'는 사랑을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만들었다. 작가의 말에서도 사랑의 이해 속에서 자신의 벌거벗은 면과 사랑하는 사람의 벌거벗은 면을 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수영과 상수가 느꼈을 자신의 벌거벗어 부끄럽고 창피한 모습과 사랑하는 상대에게서 보게 된 그런 모습을 완전히 이해하긴 어려웠을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 수영의 선택이 나는 이해가 되었다. 스스로도 정리하기 힘든, 어쩔 수 없는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더불어, 사랑을 자시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소경필' , 이 인물이 이들의 관계에선 눈에 확 들어왔다.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의 말과 행동이 앞뒤 맞지 않는 모순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 이 인물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차라리, 모순된 사람이기보다 그의 말대로 속이 훤히 보이는 속물이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다 읽고 들었던 생각은 한 가지 사랑이기보다 수많은 종류의 사랑이라는 걸, 그 사랑을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느껴지는 이해관계를 통해 서로의 벌거벗은 면까지 깊고 어두운 면까지 바라보고 드러내야 한다는 걸. 여담으로 드라마가 지금의 날씨와 너무 잘 어울린다. 연말의 즐거움은 잠잠해진 연초의 차가운 날씨와 사람을 이성적이게 만들어주는 지금의 날씨가 이 드라마가 가진 이야기를 더욱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문장
수영은 종현이 달콤한 디저트 같은 남자, 예쁘고 사르르 녹지만 입가심밖에 안 되는 남자라고 지레짐작했다. 상수처럼 퍽퍽한 닭 가슴살 같은 남자를 잊어버리기 위해 잠시 쉬어 가는.
- 41p
미경이 빠르고 대담하게 자신을 받아 줄수록 회복해 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미경의 까만 눈동자에 비친 자신은 매력 있고 괜찮은 남자였다. 더는 수영에게 벌거벗겨지고 거절당한 남자가 아니었다. 상수는 진심을 다해 미경과 만났다. 수영에게 입은 상처를 아물리고 수영과 하고 싶던 모든 것을 미경과 해 나갔다. 아주 즐거웠다. 단지 감정 때문만이 아니었다. 수영에게는 정중하자니 거들먹거리는 것 같고 친밀하자니 찝쩍거리는 것 같았다. 솔직하자니 고지식해지는 것 같고 쾌활하자니 실없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바로 옆 창구에서 별 차이 없는 일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서로 달랐다. 정규직과 계약직, 행원과 텔러. 조직이 주입해서든 스스로 장착해서든, 상수가 먼저든 수영이 먼저든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격차가 있었다. 난감하고 불쾌한 순간이 항상 있거나 생길 수 있었다. 미경과 있을 때는 그런 불안이나 불편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함께 있고 함께하는 즐거움에 몰두하기만 하면 됐다. 왜 진즉 미경을 마주 보지 않았을까? 애초에 사이즈가 안 맞았던 수영에게 왜 그렇게 집착했을까?
- 105p
수영이 그렇게까지 생각할 게 뭐냐고, 사람들 남의 일에 그렇게 관심 없다고 말했지만 종현은 차갑게 웃었다. "남의 일이라서 더 잔인하고 적나라하게 벌거벗기는 게 사람들이에요. 자신과 다를수록, 위가 아니라 아래에 있을수록 더 뻔뻔하게, 무자비하게."
- 116p
말한 대로 바닥이라는 건 끝이 없는데, 시험부터 관뒀다가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한 텐가? 바닥에 바닥이 없다면 추락에도 끝이 없다. 한번 끌려가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끌려다녀야 한다. 아무것도 없어질 때까지, 탈탈 털려 가면서. 가진 것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가지고서 버텨 내야 한다. 악착같이 붙들고 버텨서 차라리 뺏길지언정 순순히 내줘서는 안 된다.
- 126p
행복에는 늘 거짓이 그림자처럼 드리우기 마련인 듯했다. 아니, 어쩌면 거짓은 조명일지도 몰랐다. 행복이라는 마네킹을 비추는 밝고 좁은 조명.
- 148p
종현은 자신의 무력이 수영에게까지 번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고맙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내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돼 있었다.
- 151p
"고맙다는 말도 그만하고. 존댓말도 좀! 어쨌든, 너무 좋은 사람 되려고 하지 말자. 어떤 건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넘겨 버리자. 같이 살고 있잖아, 자기랑 나랑 식구잖아."
- 157p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된 것은 분명 사랑 때문이지만, 사랑만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기울어 있었다. 아마 사랑일 것이라고, 그렇게 믿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더 깊게 생각하는 것도 지금의 자신에게는 모든 사치였다.
- 159p
자신과 미경, 이 관계의 일면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미경에게 밀리고 눌리는 것 같던 기분은, 기분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동경과 선망에 끌려 때로 배려와 양보라는 명분으로 때로 결혼이라는 목적으로 그것을 덮어 보려고 했을 따름이었다. 미경의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왜 그렇게 속이 헛헛했는지, 미경의 사촌오빠와 헤어질 때 왜 자신도 모르게 직장 상사에게 하는 행동이 나왔는지 모두 명백했다. 자신과 급이 달랐고 앞으로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척하고 싶지만 모를 수 없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지만, 아팠다.
- 180p
"너무 속 썩이지 마. 살아 보니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아. 머리 굴려 봐야 누가 커트비 한 푼 주는 것도 아니고, 넘겨. 못 넘기겠으면 때려치우고. 너 아직 창창해. 젊었을 때 나보다야 조금 못 하지만."
- 190p
수영은 물끄러미 소주잔을 바라봤다. 한 톨처럼 외롭다는 말이 마음에서 표류했다. 한 말도 아니고 두 톨이라, 두 톨밖에 안 돼 더 외롭고 더 서글펐다. 안아 주기가, 안고 있기가 왜 이렇게 힘들까, 힘들어야 하는 걸까. 고작 둘인데, 둘뿐인데.
- 191p
"정말이에요. 난 속물이거든요. 팔랑팔랑 하얀 A4용지처럼 순결한 속물, 솔직하고 우아한 진짜 속물. 얻을 게 있거나 손해 안 보기 위해서만 뭘 하죠."
수영은 경필을 쳐다봤다. "그럼 아깐 뭘 얻으려고 그러셨는데요."
경필은 대뜸 배부른 곰처럼 히죽 웃었다. "미녀?"
- 205p
생활에 지쳤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랑에 지쳤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외롭게 견디는지 종현은 알아주지 않았다. 스스로 파 내려간 갱도 속에 혼자 있었다. 종현도 원치 않게 굴러 떨어진 구덩이였고, 올라올 수 없으니 더 파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알았지만, 마찬가지로 수영 자신 역시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쳤으니까. 사랑이나 생활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생활에, 생활해 가야 하는 사랑에 지쳤으니까.
- 224p
수영의 눈이 붉어졌다. "믿었어야지. 내가 여기서 널 기다리다고, 여기는 우리 집이고 넌 내 애인이라고 한 내 말을, 나를 믿었어야지. 네가 그렇게 갈 곳 없어서 피시방 간 걸 알면 내가 어떻게 될지, 내 마음이 어떤 지옥이 될지 너는 알고 믿어줬어야지! 나는 널 믿었잖아. 네가 될 거고 되는 사람이라고, 믿고 계속 믿을 수 있다고 너한테 말해 줬잖아!"
- 232p
상수는 부러 웃으며 반주 잔을 들었다. "이렇게 한 번씩 얘기하는 게 얼마나 꿀인데. 너랑 있으면 내가 그야말로 한숨 돌린다. 아무 생각 안 하고."
"그래?" 수영은 상수의 눈을 봤다.
"진짜. 너한테는 다 얘기할 수 있거든. 잘난 거, 못난 거 그런 생각 안 하고. 이런 척 저런 척 안 해도 되고." 미경이 떠올라 상수의 표정이 씁쓸해졌다가 다시 웃었다. "어설프게 척하면 당장 들키니까."
- 264p
미경과 헤어지고 나서도 종종 배가 고팠다. 처음 몇 번 만났을 때는 아니었다. 두어 번쯤 자고 난 뒤, 관계의 안정감을 확인한 뒤부터였다. 금방 먹고 나왔는데도 시야에서 미경이 사라지면 허기가 밀려왔다. 빈 집에 혼자 들어가 라면이라도 하나씩 끓여 먹어야 했다.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내 배고픔과 다른 허전함이 생겼다. 공허라고 할 만한, 추상적이고 모호한 감각.
- 304p
수영과 가까워질수록 미경은 점점 더 자신과 다른 사람 같기만 했다. 가지려고 애써 봤자 결국 안 될 사람, 끝내 끝이 다를 사람. 수영을 만나면 지금껏 달려오고 앞으로도 달려가게 될 궤도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미경에게서 어른거리던, 자신을 풍선처럼 부풀게 하고 동시에 독방처럼 옥죄던 중상위층의 생활, 윤택하게 반들거리는 온실의 감옥에서 해방되는 것 같았다.
- 306p
경필은 한 모금 마신 커피 잔을 섬세하게 내려놨다. "절대로 안 그런 남자가 어디 있어? 넌 절대로 그럴 여자였고? 똑같아, 그 문제에 있어서는 남자나 여자나 다 빈민처럼 똑같아. 기회, 외모, 돈, 능력, 시간 그 차이지 다른 거 없어. 우리 다 거지새끼들이야."
- 321p
작가의 말
이야기를 써 나가면서 사랑이 다른 감정과 다르다면 결국 우리를 벌거벗게 만들기 때문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랑의 징후인 두려움과 떨림도, 보상인 환희와 자유로움도 그래서 생겨나는 것 아닐까, 하고.
같은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에곤 실레의 나체화처럼 벌거벗은 우리는 대개 헐벗었고 뒤틀려 있기 마련이니까. 벌거벗은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벌거벗은 상대방을 지켜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존심, 질투심, 시기심같이 사랑을 둘러싼 감정들과 온갖 생활의 조건들은 오히려 더 갖춰 입고 뻔뻔해질 것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사랑한다면, 사랑을 원한다면 결국 거짓의 밝고 좁은 조명 아래서든,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는 짙은 어둠 안에서든 입고 껴입을수록 더 헐벗고 뒤틀리기만 하는 자신을 마주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이야기 안의 상수와 수영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이 여느 감정과 다르며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수많은 사람 속에서 다르게 해주는 것 아닐까. 역시 수영과 상수가 이야기의 끝에서 그렇게 알게 된 것처럼.
- 3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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