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믈렛]
임유영 시집
마음이 이상하다. 뭔가 이상하다. 임유영 시집 [오믈렛]을 읽고, 든 내 마음 상태이다. 뭐 때문에 마음이 이상할까.
마치 물렁물렁하고 얼렁뚱땅 흐르고 살랑살랑 이리저리 다니는 듯한, 이 이상한 마음은 어디서 온 걸까?
알 수 없이 흐르는 이상한 마음이 어쩐지 싫지는 않다. 그래서 시의 제목에 눈길을 주고 한번 읽고, 읽는 도중에 다시 제목에 눈길을 주게 되는 이상한 시들이다. 계속해서 눈이 따라가게 만드는 시들이 결국 내 마음에 닿게 되었고, 닿게 되는 순간이 너무 좋아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백이 부끄러운 조마조마한 마음이 되었다.
일상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문득 나도 모르게 들어오게 되는 이상한 마음들. 나에게 불어오는 바람을 있는 그대로 맞이할 때, 떠오르는 과거들. 그 찰나의 순간을 한 폭의 시로 그려낸 임유영 시집 [오믈렛]
너무 잘 읽어서 내 마음을 내어 추천한다.
마음에 닿아
기록하고픈 시들
나도 나이가 들어보니 알게 된 것이 있어
겨울밤 들이켜는 찬 소주의 맛과
아무리 부수어도 아침이면 도로 붙는
내 가정의 신비
_부드러운 마음, 17p
곰, 슬픔 알지요? 여기는 세상입니다.
동면에서 갓 깨어난 곰을 발견하면 절대로 다가가지 마세요.
_단단, 20p
놀러온 친구에게 이 동네에 개 잡아먹는 집이 너무 많다고 불평했더니
원래 가난한 동네에 그런 데가 많은 법이라고 했고,
_기계장치강아지, 57p
설탕이 독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순수한 설탕의 혐오자는의사가 아닌 알코올중독자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게 단맛을 싫어하다 못해그것에 반대하기까지 한다. 그들에게 달콤한 것은 오직 술이면 족하다는 듯이.
그러나 그들은 모르지, 아침의 오믈렛에, 짭짤한 비스킷에, 심지어 튀김옷 반죽에도
비밀스럽게 존재하는 설탕, 설탕을 잽싸게 뿌려 넣는 어떤 사람의 손. _오믈렛, 70p
진보라색 탱탱한 가지를 하나 쥐고 꼭지를 따면아기가 웃고 할머니 냄새가 퍼진다세상엔 할머니 냄새라는 냄새가 있는데
가지 꼭지 오이 꼭지에서도 맡을 수 있고
한여름 무성하게 자란 호박덩굴에서
혹은 그 덩굴의 잎을 따서 찔 때
그 수증기가 품은 냄새 속에
갓 잡은 푸성귀가 탕탕 썰릴 때
.
.
.
이 더운 날 여까지 무슨 일일꼬
등에 업힌 아기가 울고
내 새끼 우지 마라, 우지 마라,
조그만 할머니가 달래고
.
.
.
땀투성이 아기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콩국을 후룩후룩 삼키고 있다_채소 마스터 클래스, 84p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누가 좋아하냐고 물으면 좋아지고 싫어하냐고 물으면 싫어졌다.
남이 뭐라고 불러주면 그게 좋았다.
_나리분지, 1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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