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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Book Review : 책[테레사의 오리무중]

by hyemhyem 2024. 2. 2.
책 [테레사의 오리무중]

 

 

 자음과 모음에서 나온 트리플 시리즈를 좋아한다. 몇 개의 단편 소설로 이뤄진 한 권의 책에 담긴 작가의 생각이 진하게 함축되는 듯해서, 그리고 책 표지가 매번 마음에 들어서 매번 기대하게 만드는 시리즈이다. 이번엔 박지영 작가의 책 [테레사의 오리무중]을 읽게 되었다. 3편의 단편 소설과 1편의 에세이로 작가가 지닌 생각을 가득 채워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3편을 하나로 묶어보라면, 노동에 대한 소설로 그전 읽어봤던 노동 소설과는 달랐다.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는 이들이 돈과 자신/자신의 상황 사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실에 자신이 공존하기 위해 어떻게 타협할지 각자의 방법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에 등장하는 '주경'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실적인 면과 따뜻한 면 둘 다를 가진 이상적인 사람을 만나 선의를 건넨다. 마냥 이상적이지만은 않고 주경이 관전자로 제 삼의 인물로 때론 우연으로 개입하면서 건네주는 선의는 마냥 따뜻한 희망이지 않아서 좋았다. 마냥 따뜻만 하는 희망이지 않아서 좋았다.

 

 

 

테레사의 오리무중

 

 '나'와 '자아'를 서로 분리할 수 있는 현상, 쏟아져 나오는 자아가 눈으로 보이는 듯 노동하는 사람들. 미래의 자아 실현을 위해 지금 하는 일은 단순 노동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그렇게 집에 놓고 온 자아가 결국은 살이 찌고 비대해져 기름진 몽뚱아리가 되어 중요한 순간에 집 밖을 나서지 못하게 되고... 자아가 탈부착 가능하는 소재, 자아가 새로 생기고 소멸되기도 해서 사라진 자아를 찾아가는 테라사와 어쩌다가 이런 테러사에게 돈도 빌려주게 되는 주경이 등장한다.

 자신의 속에만 보이는 자아라는 개념을 나의 다른 분신으로 살아 숨쉬는 듯 표현해 흥미진진했다. 흥미로우면서 '미래의 자아실현'이라는 언젠가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기약 없는 뜬구름 같은 망상(?)을 버리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선 어떤 일이든 해야한다는 점이 현실이라는 땅에 딱 붙이게 만든다. 분명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는데 끝에는 현실의 땅에 딱 붙여버려서 마음 한 편이 살짝살짝 불편하게 느껴진다. 내가 하는 노동과 내가 바라는 자아실현의 간극이 너무 크면, 현실은 시궁창 밑까지 떨어지게 다가오는데 이 점을 순한 맛으로 소개하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문장

 

확실히 누추한 일터에 귀한 자아를 데려오는 건 테레사 같은 초짜들이나 하는 실수였다. 젊은 날 그놈의 자아실현이라는 걸 해보겠다고 기술을 익히고 경력을 쌓으며 성실한 근로자로서의 정체성을 제대로 구축해놓지 못하고 애초에 단절된 경력조차 없는 생의 경험이 누락된 사람들, 그 빈 공허 속으로 비대해진 자아만 기름지게 들어차 작은 외부의 공격에도 꿀렁꿀렁 쉽게 동요하고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만이 철없이 자아를 데리고 일터에 나와 쉽게 분개하고 쉽게 상처입고 쉽게 좌절하다가 쉽게 그만두며 다시 그렇게 성난 자아만 키우면서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는 건지도 몰랐다.

_테레사의 오리무중, 16p

 

"일을 하다가 굉장히 빈정 상하는 일이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그게 어떤 감정인지 몰랐는데, 퇴근을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게 바로 '빈정 상하다'라는 감정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 감정이 어디서 오는가 생각해봤더니, 나는 그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 그러면서 내가 하는 일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그런 취급을 받아도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차별적 자아의 무례한 이중성에서 나온 거였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이건 자아가 가질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저급한 것 중 하나구나. 나는 고작 이런 자아를 품었구나. 이런 끔찍한 자아와 마주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는 고민했어요. 내가 타인과 부딪침 없이 자아가 실현된 곳에 있기만 하면, 내 자아는 훨씬 고결한 마음과 고귀한 생각만 하며 인격적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러다가요, 그 마음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어요. 혼자여야 고귀할 수 있는 자아라면, 그게 진정 고귀한 게 맞나. 그런 자아실현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생각을 하는 자아는 너무 무섭다. 내 자아는 너무 외롭고 너무 무섭다. 그래서요, 주경 씨에게 부탁했던 거예요. 나와 자아를 혼자 두지 말아달라고. 같이 찾아달라고. 아니 같이 영원히 찾지 못하게 해달라고."

_56p

 

그 후 주경은 대출업체의 추심 팀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으로 자아를 두고 다니는 법을 익혔다. 내 입에 풀칠하겠다고 입으로 지은 많은 죄들, 내 자아는 소중하다고 집에 곱게 모셔두고 타인의 자아를 손상시키기 위해 애써온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주경은 다만 한 가지 기도를 했다. 늦게 갚아도 좋고 날짜를 지키지 못해도 좋아요. 대신 전화만 받아요. 잠적하지 말아요. 사라지지 말아요. 언제든 연락이 닿기만 해줘요. 살아만 있어요.

_57p

 

테레사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주경은 계속 테레사의 입 모양을 떠올리며 그 말이 무슨 말인가 맞춰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아무리 짜맞춰 보아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요, 라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아서 그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면 좋겠다, 생각하며 그 입 모양을 대신할 다른 말들, 테레사를 위한 더 나은 말, 목요일에는 포도청, 맛있는 건 포도청, 목에 좋은 포도청, 그런 말들을 자꾸 떠올려보았고 생각난 김에 인터넷으로 포도청 만드는 법을 검색해보았다. 그러다 아니다 이건 아니다, 테레사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말했으면 그 입 모양을 그대로 읽는 것, 그것이 관객인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생각하다가 주경은 자신이 만난 게 실은 테레사가 아니라 성 테레사 자매님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테레사와 주고받은 메세지 창을 열고 테레사는 지금 어디에? 라고 적어 보냈다. 곧 1이 사라지고 답변이 왔는데 그것을 보며 주경은 마스크 안에 감춰진 코를 더듬더듬 만져보았고 목구멍 깊숙이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달짝지근한 포도청의 맛이 올라오는 것 같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_63p

 

 

올드 레이디 버드

 

 박물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영, 정규직인 학예사인 정과는 직장 내 '우정'이라 부르고 싶은 인간관계가 생겼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정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 되고픈 마음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척이라도 하는데, 갑작스러운 사고를 겪은 정을 우연히 발견하고 도움을 주었다 생각했는데 어째 영의 마음대로 이 관계가 가지는 않은 듯하다. 고양이가 있는 세계와 없는 세계, 아무나 속할 수 없는 그 세계에 영은 허락을 받고 속하고 싶다. 하지만, 인간사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기에 재계약 없이 다시 돌아간 세계 속에서 영은 자신만의 방법을 찾으나 결국에 고양이보다 정을 생각했던 마음을 깨닫게 된다.

나에게 없는 것이 있는 세계, 그 세계 속에 속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자연스러움 그 보다 더욱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 마음을 남에게도 보일 정도로 투명하게 내비친다면, 자연스러움이 속물로 참 쉽게 변할 수 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속물이라 보여도, 당사자가 된다면 속물이라 할 수 있을까. 소설을 읽으며 두 입장 사이의 미묘한 줄을 타면서 주인공 영에게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된다. 그래서 쉽게 속물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게 만들기 위해 작가는 의도한 걸까. 마지막에 고양이 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정과 친해지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더욱 내보였던 영의 지난 모습과 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며 고양이의 안부를 묻는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 마음을 잊지 않고 간직한 영의 마음이 전해져서.

 

 

기억에 남는 문장

정이 영우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사실 영우가 곧 떠날 사람이라는 것,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는 임시직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터였다. 어떤 약점을 들켜도 괜찮으리라는 그 임시성이 주는 안도감이 실은, 언젠가 어떻게 다시 만나더라도 영우가 결코 정을 위협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이 되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_올드 레이디 버드, 73p

 

사소한 불평, 그건 허락된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은 결코 정이 될 수 없었다. 어떤 불평을 하고 어떤 솔직함을 드러내도 그것이 그저 귀여워 보일 정도의 단단하고 이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만이, 작은 불만들을 지저귀듯 털어놓을 수 있었다.

_74p

 

안전. 중요한 것은 언제나 안전이었다. 영우가 새로운 도전이나 다른 길을 알아보지 않고 징검다리 건너듯 이미 익숙해진 일들을 반복하면서도 어떤 곳에서도 지속성을 기대하게 되거나 관계가 깊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_89p

 

기간의 정함이 있는 다정. 세상에는 그렇게만 존재하는 다정들도 있었고, 그 단기적이고 임시로만 가능한 다정이 아니라면 애초에 다정이란 단어를 제 곁에 놓아둘 수 없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었다.

_108p

 

좋은 것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을 좋은 채 간직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다. 좋은 것은 제 것이 되는 순간 좋지 않은 것이 될 터였다. 그런 식으로 선택해서 얻은 것은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얻은 후에도 마음껏 좋아지지 않았다. 그러니 영우가 진짜 선택한 건 늘 후회하는 삶일 뿐인지도 몰랐다.

_119p

 

고양이가 있는 세계란 애초에 마냥 환하고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추위와 어둠 속에서라도 고양이와 있기를 선택한 사람들, 고양이에게 한 줌의 따뜻한 햇볕이 있는 요람을 마련해주기 위해 스스로에게 추위와 어둠과 불안과 긴장을, 그 책임을 허락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 고양이가 있는 세계였다.

_131p

 

그러나 언젠가는, 아주 오래 고양이가 있는 세계 안에서 한때 자신을 스쳐간 작은 우정을 임보한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후라면, 어쩌면 이 정도의 마음으로도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것은 자신이 허락하는 게 아니라 길 위에서 자신과 함께 떠도는 어떤 고양이가 허락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오늘 밤의 영우는 생각했다.

_133p

 

장례 세일

 

 가장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다. 부모님, 특히 세일즈맨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장례를 놓고 드는 비용을 어떻게든 합리적인 가격으로 애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현수의 이야기다. 현수는 일하는 직장으로 장례 비용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아버지의 장례를 기다려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버지의 장례를 어떻게 하면 잘 팔 수 있을지 고민의 고민을 하며 아이디어를 낸다. 한평생 세일즈맨으로 살았던 아버지이지만, 자신의 인생을 비싸게 사서 싸게 팔게 되었지만, 현수의 아이디어로 진정한 애도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애도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진정한 애도란 무엇일까? '그래도 싼' 인생은 있을까?

 소재가 웃기면서도 읽으면 읽을수록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한 번쯤은 생각하고 고민할 만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장례에 나는 과연 얼마큼의 애도의 마음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진정, 합리적 장례 비용이라는 걸 한 번 이상 고민하지는 않을까. 나의 아버지의 인생은 어떠셨으나, 싸게 사서 비싸게 파셨을까. 아니면, '그래도 싼' 인생이셨을까. 떠나간 아버지는 모르시겠지만, 이에 남아있는 가족은 알게 된다는 것이 무언가 서글프게 느껴진다. 남아 있는 가족이 아버지의 장례의 모습을 알게 된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 문장

 

인생은 타이밍이다. 죽음 역시 타이밍이 중요하다.

_143p

 

평생을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독고씨라면 자신의 죽음을 가지고 저비용 고품격, 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은 하는 클래식한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세일 찬스를 현수가 놓친가면 세일즈맨의 기본이 안 되었다고 안타까워할 게 분명했다. 싸게 사고 비싸게 판다. 결국 세일즈의 기본은 그게 전부라고 독고 씨는 말하곤 했다. 그렇게 잘 아는 것치고는, 본인의 인생은 비싸게 사서 싸게 팔아넘기는 식으로 마무리될 게 뻔했지만 말이다.

_151p

 

사실 처음부터 세상의 가격을 결정하는 건 공정가에 대한 객관적 지표나 정당한 고민이나 의지가 아니라, 이렇게 많은 이들의 어쩔 수 없음인지도 몰랐다. 수 많은 어쩔 수 없음이 모여서 지금 유통되는 합리적 가격을 결정하고 마침내 불공정에 이르는 것이다. 그 불공정함으로 이익을 얻는 특정한 소수를 위해서 세상은 어쩔 수 없음의 윤리와 신념을 더 넓게 퍼뜨리고, 교세를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_167p

 

돌이켜보면 감사 카드를 쓰던, 독고씨가 아는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던 수고로움은 현수의 진심이었다. 거짓된 감사라 해도 현수가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감사를 모아 독고 씨의 삶과 죽음을 축복하고 애도하고자 했던 현수의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_201p

 

 

 

 

* 자음과모음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착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