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 작은 방] by 박노해 사진 에세이
# 책 선택 이유
시집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다. 저번에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읽고 나니 많은 시를 접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떤 시인의 책을 골라야 할지 몰라 고민이 되던 중, 송민호 인스타그램에 박노해 작가의 새로운 시집에 대한 포스팅이 올라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송민호의 팬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책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검색해보니 관심이 가게 되어 찾아서 읽어보게 되었다. 원래 새로 나온 신작을 읽고 싶었는데 도서관엔 없어, 그다음 책인 [내 작은 방]을 빌려 읽었다.
# 책을 읽은 후
일단, 책 표지 앞에 있는 시와 서문의 내용을 읽으니 말 그대로 끝났다... 서문이라 2~3장 정도 책의 시작이지만 난 여기서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어떤 단어로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글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글 안에 내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 한 가득 품에 담고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사진 에세이라 여러 나라를 가면서 찍은 사진과 한 편의 시가 더불어 있으니 사진 한번 보고 시 한번 읽고 다시금 사진 한번 보면서 시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이 과정이 즐거웠고 한 편의 시를 어떻게 만드는 지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사진의 장소가 인도, 파키스탄, 터키, 버마족, 캄보디아 등 다양했는데 사진 속 인물을 살펴보니 각 나라의 다수를 대표하기보다 소수의 사람들이었다. 왜 소수에 대한 시를 쓰셨을까? 생각 한쪽에 둔 채, 끝까지 읽고 나니 마지막에 작가에 대한 설명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해했다. 작가가 걸었던 길을 짧은 글의 설명으로 읽어보니 그의 길이 이 사회에서 소수가 걷는 길을 걸어오셨구나. 그럼에도 같은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작가가 대단하다 느껴졌고 강인하게 보였다. 그의 시처럼 때론 강한 의지를 가지다 가도 때론 사랑을 마음에 품고 빛을 내는 따뜻함은 가지다 가도 때론 묵묵히 걸어가는 수행자의 삶을 이어가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시 밑에 영어로 번역되어 있었는데, 다른 시집에서 볼 수 없었던 부분이라 신기했다. 그리고 다행히 영어를 잘 못하는 나도 쉽게 읽고 번역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 마음에 와 닿아 따뜻함을 준 시들
해맑은 아침 미소
깊은 산마을에 여명이 밝아보면
나뭇단과 샘물을 지고 오는 건 소녀의 일과다.
부엌에서 아침밥을 짓던 엄마는
우리 딸 잘한다고 애썼다고 웃음으로 맞아준다.
미소 띤 대화 속에 생명의 바람이 이는
‘담소풍생’의 아침이다.
미소는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힘이니
서로에게 다정한 눈빛 한번, 해맑은 미소 한번,
새롭게 시작하는 하루가 눈부시다.
망고를 깎아주는 아버지
결혼한 딸이 첫 아이를 안고 찾아왔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로 딸을 키운 아버지는
어두운 안색의 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딸이 제일 좋아하는 망고를 따서 깎아준다.
긴 침묵 사이로 눈물과 애정과 격려가 흐른다.
아내 사진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날리던 아버지는
딸에게 힘을 줄 닭죽을 끓이기 시작한다.
집이란 언제든 말없이 나를 받아주는 이가 있는 곳.
다친 새처럼 상처받은 존재들이 그 품 안에서
치유하고 소생하고 다시 일어서 나아가는 곳이니.
내 영혼의 동굴
계엄령과 휴교령 내려진 카슈미르의 아침.
어른들의 긴장 어린 두런거림에서 빠져나온 남매는
전기도 없는 어둑한 방으로 숨어 들어간다.
한 줄기 햇살이 비추는 창가에 걸터앉은 누나는
글자를 모르는 동생을 위해 책을 읽어준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바깥세상과 아득한 별나라와
고대 신화 속으로 멀고 먼 여행을 떠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작은 동굴이 필요하다.
지치고 상처 난 내 영혼이 깃들 수 있는 어둑한 방.
사나운 세계 속에 깊은 숨을 쉴 수 있는 고요한 방.
등불을 밝히며
라자스탄 사막이 붉게 물드는 시간,
이라픈은 선조들의 사진과 물품을 놓아둔
선반 위에 등불을 켜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에게는 낮의 시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내 마음을 밝히는 밤의 시간이라오.”
밤은 그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 비쳐 나오는 시간.
어둠은 그 내면의 은밀한 빛이 비쳐 나오는 시간.
자기만의 방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행위와 마음이
다음날 세계의 사건으로 드러나는 것이니.
유랑자의 노래
자유와 유랑이 핏속과 뼛속에 스며있는 집시.
별빛을 이불 삼고 바람을 자장가 삼아 자란
집시 아이들의 눈빛은 야생 늑대처럼 형형하다.
가는 곳마다 핍박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날 때부터 새겨진 유랑의 충동은 막을 수 없다.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대지와 밤하늘의 별빛,
자신의 두 발과 뜨거운 심장, 그리고 아이들이라는
삶의 진실을 춤추며 노래하는 존재들,
‘나에게는 집도 없네. 기댈 곳도 없네.
온 우주와 대지가 나의 집이라네.
두 발과 어깨 위에 인생을 짊어지고
작은 천막에 잠시 쉬었다 떠나가네.
그 무엇도 아닌 자유만을 열망하며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살아가며
오, 어디에도 머무르지 말고 스스로 길이 되어 가라 하네.’
톤레삽의 수상가옥
아시아에서 가장 큰 바다 같은 호수 톤레삽.
지상에 집 한 칸 마련할 땅조차 없는 가난한 이들이
출렁이는 황톳길 강물 위에 뗏목 집을 지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이곳에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감사를 바치지만,
싱싱한 생선을 잡아 올리고 액젓을 담아 제공하는
이들이 없다면 이 나라 밥상은 메마르고 말리라.
“저도 흙을 밟고 나무를 심고 살고 싶죠.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가족이 모여 웃으며 살 수 있다면
그곳이 땅인데 물인들 어때요.”
환대의 식사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알 자지라 평원에
첫 비가 내리고 햇살이 눈부신 아침이다.
쿠르드 마을의 움미는 낯선 나그네의 손을 이끈다.
레몬즙을 짜 넣은 허브치즈, 고추피클과 자두절임,
야생꿀과 올리브기름과 갓 구운 빵을 내온다.
여기 이 작은 방은 우리를 감싸주고 있고
세상 어디서든 너를 반기는 벗은 있다고,
속 깊은 그 마음이 은은한 햇살로 빛난다.
고비 사막의 게르
끝없는 초원과 황무지가 펼쳐지는 고비 사막.
사막에는 길이 없다. 가는 곳이 곧 길이다.
초원에는 터가 없다. 천막 방이 그의 터다.
한곳에 오래 안주하면 사람이 나태해지고
귀한 초원도 황폐해져 사막이 되고 말기에,
간소한 살림살이만 단단하게 이고 지고
내일이면 다시 새 풀을 찾아 길을 떠난다.
가이 없는 우주 가운데 지구에서의 짧은 한 생,
아, 나는 이 땅에 잠시 천막을 친 자이니
내가 걸어온 등 뒤에는 푸르름만 남기를.
엄마의 등
안데스 만년설산 자락의 감자 수확 날.
엄마는 뉘어놨던 아이가 추위에 칭얼대자
전통 보자기 리클라로 등에 업고 자장가를 불러준다.
우리 모두의 첫 번째 방은 엄마의 등.
찬바람 치는 세계에서 가장 따뜻하고 믿음직한
그 사랑의 기운이 내 안에 서려 있어,
나는 용감하게 첫 걸음마를 떼고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선 청년이 되어
나만의 길을 찾아 걸어가고 있으니.
사랑, 그 사랑 하나로 충분한 엄마의 등은
가장 작지만 가장 위대한 탄생의 자리이니.
두 손을 녹이는 노부부
긴 세월 한 길을 걸으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온
노부부가 일곱 아이를 낳아 출가시킨 흙집 방에서
불을 피워 언 몸을 녹이며 아침을 맞이한다.
카스트 계급의 최하층민으로 태어나
저 두 손으로 얼마나 많은 노동을 하고
밥을 짓고 쓸고 닦기 아이들을 씻기고 안아주었을까.
저 두 손으로 얼마나 많은 씨앗을 심고 꽃을 기르고
눈물을 닦아주고 사무치는 기도를 바쳤을까.
이제는 젊음이 다 흘러나간 빈손이지만
오늘도 또 하루를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한 생이라고
사랑으로 닳았니 서로의 손을 위로한다.
고원의 발걸음
한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는 높고 깊은
안데스 고원길의 보따리장수 델 솔라르.
멀리 떨어진 마을과 집들을 오가는 그의 등짐에는
밤이면 방이 될 천막과 담요, 식량과 요리 도구,
자녀와 친구에게 전해달라고 부탁받은
생일 선물과 편지들까지 가득 담겨있다.
“나이가 드니 점점 발걸음이 느려지네요.
하지만 저를 기다리고 반겨주는 이들이 있어서,
30년 넘게 해온 일을 누가 대신할 수도 없어서,
내 다리가 허락하는 한 이렇게 걸어야지요. 하하.”
이 지상에 나만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그 무게가
오늘도 나를 걷게 하는 힘인 것을.
내 마음의 방
지상에 집 한 채 갖지 못한 나는
아직도 유랑자로 떠다니는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나만의 작은 방이 하나 있어
눈물로 들어가 빛으로 나오는 심연의 방이 있어
나의 시작 나의 귀결은 ‘내 마음의 방’이니.
나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주어져도
내 마음의 방에 빛이 없고
거기 진정한 내가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너를 만나고
무슨 힘으로 나아가겠는가.
이 밤, 사랑의 불로 내 마음의 방을 밝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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