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 by 이종산 소설
은행나무 출판사로부터 서평단 당첨이 되어 읽게 되었다.
# 책 소개
책 [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 올여름을 시원하게 해 줄 공포소설이다. 책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두근거림을 느끼게 한다. 작가의 말 부분에서 저자는 공포 소설을 흥미롭게 읽는 편이고 자신이 공포 소설을 쓸 지 몰랐다고 한다. 문득 떠오르는 단편의 기억이 소재가 되어 공포 소설을 쓰게 되었고, 이것이 시작이 되어 7편의 공포 소설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저자의 말 대로, 한 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무시무시한 무서움보다 땀 한 방울 흘러 등이 서늘해지는 섬뜩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섬뜩함’이라는 느낌 하나로 이어지는 7편의 소설은 영화나 소설보다 우리 일상에서 경험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소재로 여기에 저자의 상상력과 공포가 더해져 한층 공포감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저자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여성으로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시선이나 인식을 보여주면서 더불어 여성 혐오를 이야기하는 등 꺼내기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에 공포를 더했다. 이는 여성으로 살고 있는 독자인 읽는 이가 서늘한 기분을 느끼며 이 사회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 7편의 소설 중 이야기하고 픈 것
* 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
종일 아파트에 갇혀 민재가 아침을 먹고 난 그릇을 설거지하고, 민재가 입고 벗어둔 옷을 빨래하고,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그러다 민재가 먹을 저녁을 요리하고 있을 때면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아내라는 역할을 빼면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 24p
진아는 민재의 어깨를 잡아 자기 쪽으로 당겼다. 그의 얼굴이 보였을 때 진아는 흠칫 놀라 눈을 부릅떴다. 남편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 남자의 얼굴이었다. 창백한 얼굴에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젊은 남자.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잠을 자려는 듯했다. 진아는 그 얼굴을 물끄러미 봤다. 점차 두려움이 가셨다. 그러자 다시 얼굴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진아는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진하고 성적인 키스가 아니라 애정이 담긴 가벼운 뽀뽀였다. ‘잘 자. 이제 쉬어도 돼. 내 옆에서 한숨 푹 자.’ 남자가 평안하고 깊숙한 잠에 빠져들었다. 진아는 그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 38p
& 빈 쇼핑백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소재가 참신하게 느껴졌다. 쇼핑백은 투명하지 않은게 대부분인데 안에 무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쉽고,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것도 그것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게 된 이상하고 희한한 사건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진아. 죽은 남자는 자신뿐 아니라 남아 있는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쉬지 않고 일을 하며 지치게 바쁘게 살았을 것이다. 알바를 가는 동안 잠깐 버스 자리에 앉아 가는 것이 잠깐의 쉼이었을 텐데, 어이없게,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영원히 쉬게 되었다. 이를 본 진아가 계속해서 그 사건을 떠올리며 찾아보며 남편인 민재에게 말하는 것도 아마, 죽은 남자와 자신이 비슷하게 느껴졌기에. 아내라는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지난날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보며 후회해도 어쩔 수 없다는 감상에 빠쪄 있었기에. 진아는 그 남자에게 애정 어린 눈빛으로 본 것은 아닐까.
* 흔들리는 거울
G씨는 현실적이고 솔직한 성격이다. 나는 그런 성격의 G 씨와 대화하는 것이 편했다. 나는 예민한 성격에 내면의 감정이나 세계에 몰두하는 편이어서 현실적인 사람과 대화를 하면 균형이 맞춰지는 느낌이 든다. 땅굴만 파고 들어가고 있다가 머리를 잠깐 밖으로 내민 느낌이랄까. 특히나 요새처럼 두문 분출하며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을 때는 이런 만남이 중요하다. 잠시 내면에서 벗어나는 시간. 자신만의 세계에서 바깥 세계로 나가는 외출이다. - 46p
엄마와 아빠가 거실에서 일일 드라마를 보는 시간에는 나도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있을 때가 많았지만 가끔 경모까지 부모님과 tv를보고 있으면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거실 바닥에 엉덩이를 슬쩍 붙였다. 그렇게 네 식구가 tv 앞에 모여 쓸데없는 말을 한두 마디씩 나눌 때면 내가 가족이라는 것에 소속되어 있음을 어느 때보다 피부에 와닿게 실감했다. - 56p
& 만약 내가 혼자 살고 있는데 거울 혼자 흔들리고 있다면, 너무 무서워 집에 있는 거울을 모조리 치울 것 같다. 혼자 자취해도 무서운 일이 많은데 함께 살던 가족이 나 빼고 사라지고 나 혼자 있게 된다면, 이것만큼 슬프고 쓸쓸하고 공허하지 않을까. 함께 tv를 봤던 거실도, 밥 먹던 부엌도 각자의 방이 사람만 없이 모든 물건이 그대로 있는 등 집안 어느 한 곳 가족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는 곳은 어느 곳도 없을 것 같다. 나도 나름 가족 수가 많은데(?), 나 포함 6명이다. 함께 있을 땐, 시끄럽기도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나 공간은 제한되지만 한 명이라도 없다면 빈자리를 느낀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나 기쁜 일을 당장 얼굴 보며 이야기지 못할 때, 날씨가 너무 덥거나 너무 추워 잘 지내고 있는지 등 나도 모르게 문득 생각이 난다. 가족은 아무 말 없이 그냥 같이 밥만 먹어도 그냥 같이 tv를 보고 있어도 편안하고 안정감 느껴지는 그런 존재이다. 이런 가족이 사라지게 되면, 그것도 나로 인한 일로 인해 갑자기 떠나게 되면, 시간이 지났어도 그리워할 것 같다.
비워진 가족의 빈 자리를 여기선 거울을 통해 다시 가족을 볼 수 있었는데, 다소 공포스러운(?) 방법이었다. 해리포터 사라진 마법사의 돌에서 본 ‘소원을 보여주는 거울’, 기묘한 이야기 시즌 1편에서 조명을 통해 다른 세계에 있음을 전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 봤을 땐 기괴하게 느껴지겠지만 각각의 가족에게 거울이 하나씩은 있었으니 아마 이 거울을 통해 주인공에게 무언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주인공은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이 떠났다는 죄책감을 자신도 모르게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 지니며 살아갈 것이다. 이 모습을 다른 세계에서 볼 가족들은 누나가, 딸이 그 세계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차피 자신들이 있을 세계에서 만날 것이기에 잘 지내기를 거울을 통해 어떻게든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흔들리는 거울’은 겉으로 보기엔 기괴하고 무섭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내면은 혼자 남겨진 가족을 위한 마음이 느껴진 소설이었다.
* 혼잣말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머리를 감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중얼거리는 그 혼잣말이 내 목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오싹 소름이 끼쳤다. 왜 그걸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10년 전 파리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내 귀에 속삭이던 그 목소리는 나를 떠난 적이 없었다. - 109p
& 짧은 내용이었지만 짧은 시간 내로 섬뜩했다. 혼잣말이 혼잣말이 아니었다니. 나도 혼잣말을 자주 한다. 손님이 없는 공간에서 혼자 아르바이트할 때, 설거지나 청소할 때, 짜증 나는 일을 이야기할 때 등 생각보다 혼잣말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이게 내가 한 소리가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내 머리와 내 입술을 빼앗겨 조종당하는 기분이지 않을까. 작가의 말에서도 이 소설을 쓴 시작은 자신의 생각이 나로부터가 아닌 어디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전공수업 때 교수님께 들었던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내용은 미디어, 책, 전문가 등에 의해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각들이 어디서부터 왔는 지를 알아야 하고 편견 없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이 소리를 듣고 저자처럼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어떻게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지 생각도 해보고 했지만 한번 만들어진 것을 180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새로운 시각이 힘들면 적어도 편견 없이 동등하게 바라볼려고 한다. 때론, 굉장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도 있지만.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잘 걸려 수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소설 ‘혼잣말’은 새로 알게 된 사실에 충격을 받긴 했지만, 도리어 공포보단 좋은 영향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 은갈치 신사
“아가씨랑 나는 사는 세계가 다르니까.” - 266p
“이제 아가씨도 나랑 같은 세계에 살고 있네. 그렇지?” - 273p
& ‘세계’ 라는 단어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소설 ‘은갈치 신사’에선 세계는 은갈치 신사와 주인공은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듯했다. 네가 사는 모습이 나랑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이 말이 긍정인지 부정인지 듣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은 기분이 나빴다. 왜냐하면, 자신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 않는 듯한 행색인 은갈치 신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자신의 열심히 무시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은 내 뜻대로 흘려가지 않기에 미래엔 성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찌어찌 살다 보면 내가 상상했던 방향대로 가지 않는다. 이걸 경험했기에 주인공은 봤는지 안 봤는지 상상 속에서 다시 은갈치 신사를 마주쳤을 때 스스로가 살고 있는 세계를 그 신사를 통해 생각한 것은 아닐까.
나의 인생이 다른 사람보다 또는 내 바람보다 훨씬 별로일 때, 스스로 알고 있지만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듣는게 더 나을 때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나의 세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하니 좋기보다 스스로 한심하다고 느껴져서 무기력감이 느껴졌지만 어떤 세계에 살든 내가 괜찮다 하면 괜찮은 거니. 다른 것보다 나에게 집중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청소 아주머니
화장실에 단둘이 있을 때는 위엄이 넘쳐 보였던 그녀가 그날 복도에 서 있을 때는 몹시 기운 없고 희미해 보였다. 사람이 죽은 후에도 생전 하던 일을 계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가여워졌다. - 282p
& ‘그 사람 고생만 하다 갔어.’ 라는 말은 떠나간 사람에 대한 연민일까. 고생만 하다가 떠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까. 며칠 전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마지막 회를 보고 나서 많이 울기도 했고 엄마가 떠올라 이야기를 꺼냈다. 마지막엔 모자가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를 하며 서로 가까워지는 이야기였다. 그중 김혜자 선생님의 역할인 옥동의 한 말이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미친년이 그런 생각을 했겠어. 자식이 밥만 잘 먹고살 수 있으면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어.’라는 말이었다. 그땐, 밥이라도 잘 먹을 수라도 있었으면 잘 사는 거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게 자식이 부모를 떠나게 하는 상황이었는지도 모른 채. 당사자가 되지 않으면 그 선택을, 그 상황을,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남의 눈엔 많은 고생을 하고 갔을지라도 또는 이기적이게 살아왔다 욕하더라도 그 입장이 내가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행복한 하루를 잘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소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지만, 위에 쓴 문장에 공감이 되면서도 가여워질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쓴다. 다만, 모든 이가 오늘 하루를 잘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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