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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포도밭 묘지
편혜영
2022 김승옥문학상 대상 작품이라서 그리고 북스타그램 게시글 속 '포도밭 묘지' 작품이 제일 인상 깊다는 얘기를 보니 기대를 하며 읽었다. 읽으며 최근 방영한 드라마가 생각이 났는데, '사랑의 이해'이다. 작품 속 4명의 등장인물이 상고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해 직장인이 되었다는 점, 고졸 경력으로 일한 경력보다 대우받지 못함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아서 그 폭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아등바등한 날을 지속했음을 말해준다. '사랑의 이해' 드라마도 약간 이와 비슷해서 읽는 내내 겹쳐 보일 수밖에 없었다.
'포도밭 묘지'라는 제목과 남이 장군, 남이섬, 조상 덕을 본 능이, 말라 비틀어 버린 포도밭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내가 나는 포도 그리고 4명의 등장인물이 함께 있는 모습이 이해가 되면서 한편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다(문학적 해석 능력이 이렇게 떨어짐을 나는 다시 느낀다.) 작가 노트에서 작가가 이야기한 포도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결국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포도의 품질 그리고 이에 따른 등급별로 나뉜 계급 같은 것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어려선 느끼진 못했던 것들을 나이가 먹으면서 느껴지기도 하고 구분 짓는 걸 나도 모르게 하고 있기도 하고 누군가에 의해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등을 느끼는 나이가 되어지는 것 같다. 매일이 행복하고 웃음만 가득한 날이 될 순 없다는 걸 알지만, 현실이나 사회 속에서 등급별로 나뉘어진 것들을 보게 될 때마다 씁쓸한 맛을 느낄 수밖에. 이 씁쓸한 맛이 혹 검은 포도를 숙성해 만든 싼 포도주의 맛일까 싶다.
<기억에 남는 문장>
우리는 일단 우리 몫의 미래에 순응했다. 대학을 가거나 사회적으로 주어진 것과 다른 사람이 되려면 응성을 부리기 대신 자립심을 키우는 편이 나았다. 자립심이 마음이나 용기가 아니라 돈이라는 게 문제가 됐다.
- 13p
그들은 아무 얘기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오는 그게 다행이라고 했다. 실패한 이야기나 마음을 먹먹하게 하는 얘기는 한오를 두렵게 했으니까. 그런 고객들도 성공한 적이 있었지만 잠시에 불과했다. 결국 실패에 이르고 그러면 대게 가진 것을 잃었다.
- 24p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비슷한 모양의 방석을 깔고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인생의 어느 시기가 되면 알아서 다른 자리를 찾아갈 줄 알았다. 그때 우리가 가능하리라 여겼던 인생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애초에 그런 것이 있기는 했을까.
- 34p
뼈처럼 말라버린 포도알을 만지작거리며 서 있는 수영과 윤주를 두고 나는 마른 잎을 밟으며 끝까지 걸어가 봤다. 죽어가면서도 햇빛을 받은 탓인지 마른 가지와 나뭇잎에서 희미하게 포도의 단내가 났다.
- 34p
작가 노트 ㅣ 검은 포도의 맛
그리고 보면 이 소설은 억울하게 죽은 남이 장군과 그의 영험함과 전적으로 무용한 산책과 공원의 가묘, 다 죽은 것처럼 보이던 그날의 포도밭과 이제는 재배량이 준 검은 포도 같은 것에 의해 쓰였다.
- 38p
진주의 결말
김연수
이 작품이 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 중에 나에게 제일 인상 깊었다. 그리고 작품노트도 마음에 들어서 다시 읽어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여의치 못해 읽지 못했다. 이해받을 수 있는 삶, 이야기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어릴 땐. 그런데 이런저런 일들을 내가 겪게 되니, 또는 이런 저런 일들을 겪었던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누군가 나에게 자신이 겪은 속상한 일을 이야기한다, 공감해달라는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는 게 느껴진다. 곁으론 말하는 이의 마음이 이해된다 하지만, 속사정은 각자만의 사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남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있는 일이 된다. 명확한 입장 차이다. 이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이해되지 않아도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하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이해하고 넘어가야 차이가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넘어간다. 그렇게 쌓이는 이야기가 많아지면 타인을 이해하는, 이해하지 못한 나를 이해하는 범위가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이해를 바라는 사회는 아니지만,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를 '이해'라는 범위를 넓히기 위해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 가치는 있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문장>
사람의 마음을 연구한다는 선생님도 저를 이해하려도 애썼을 뿐이지 이해하진 못하셨잖아요.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그동안 제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면서 그게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68p
방금 제게 하신 질문은 엄마가 죽은 뒤, 그리고 아빠가 치매에 걸린 뒤 제가 저 자신에게 수없이 던졌던 질문들과 같은 것이에요. 엄마는 왜 죽었을까? 아빠가 치매에 걸린 이유는 뭘까? 그러면 수많은 답들이 줄줄이 떠올랐는데, 그건 마치 머릿속에 떠오르는 나쁜 생각들 같았어요. 아빠 말대로 내가 아닌 생각들, 그냥 줄을 그어 지우면 되는 생각들. 어느 날 느닷없이 일어나는 재앙은 그런 생각 같은 것이죠. 그렇다면 그건 누구의 생각일까? 어쩌면 신이 아닐까? 그렇다면 신은 왜 이런 나쁜 생각들을 지우지 않는 걸까요? 왜 앞뒤도 맞지 않는 이런 일들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일까요? 마치 치매에 걸린 사람처럼 말이에요
- 78p
작가 노트 ㅣ달까지 결어가는 사람처럼
이처럼 희망은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한다. 그러나 과거에서 희망을 찾지 말아야 한다. 희망은 우리의 미래에 있었다. 방금 '있다'가 아니라 '있었다'라고 쓴 것처럼. 이미 결말을 아는 사람처럼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바로 희망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 81p
그리고 돌아와 [진주의 결말]의 결말을 썼다. 타인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삶의 일들은 그저 벌어질 뿐인데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유가 필요 없다. 대신에 희망이 필요하다. 나의 희망으로는 결코 타인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진주의 결말]을 쓴 뒤로 달을 바라볼 때마다 지금 걷는 사람을 생각한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하는 일이다. 우리가 달까지 걸어갈 수는 없겠지만, 달까지 걸어가는 사람인 양 걸어갈 수는 있다. 지금 이 순간, 달까지 걸어가는 사람인 양 걷는 사람의 발은 달에 닿아 있다. 그러나 멈추지 말고, 계속 걸어가길.
- 82p
홈 파티
김애란
우연히 따라간 홈 파티에서 마주하게 된 인간의 속내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초대받은 홈 파티이지만 어정쩡한 위치에 애매한 대화 속에서 할 수 있는 건 잘 듣고 그냥 웃는 거 아닐까 싶기도. 선을 탈 듯 말 듯한 말속에서 기억에 남는 주제가, 고아원에서 독립하게 된 아이들 이야기였다. 이전 뉴스나 기사로 접했던 일이었기에 제대로 알려주는 이가 없어 괜히 어린 이들만 피해를 보고 있음에 마음이 많이 안타까웠던 일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금융 문맹'을 얘기하는 대화 속에 만약 내가 있다면 참으로 가만히 듣기도 가만히 웃기도 힘든 상황일 것 같다. 그 자리를 떠나는 주인공에게 오늘의 모임이 즐거웠냐 물어보는 오대표의 표정, 이를 보고 좋았다 답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그 홈 파티 자체를 보여주는 모습 같아 급히 떠나는 게 상책이었던 그녀가 이해됐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인간의 속내는 생각보다 추악하다는 걸 우연히 가게 된 홈 파티에서 보게 된 하나의 연극과도 같은 일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그녀였기를.
<기억에 남는 문장>
사실 해방 이래 한 번도 돈을 욕망하지 않은 적 없으면서, 겉으로는 노동과 근면을 미덕인 양 가르쳐온 사회가 갑자기 저더러 문맹이라니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그간 저나 제 부모님이 살아온 방식을...... 응, 실존을 부정당한 것 같아서.
- 119p
일시적인 일탈
정한아
기억에 남는 문장을 따로 적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을 읽는 기억은 남기고 싶다. 작가노트에선 '작업실 유령'이라고 말씀하시던데, 유령이라 그런지 섬뜩하기도 하고 작업실 유령이면 거기서 작업 같은 걸 할까 싶은 장난 같은 궁금증도 떠오르게 만든다. 이전 작가님의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을 읽어서 인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 일시적인 일탈이 점차 돌이키기 힘든 길로 걸어가는 게 보이니 마음 한편이 쓰라렸다. 뒤돌면 다시 원래 자리로 가는 길이 어둡고 멀기만 할 텐데 더 이상 자신을 망가뜨리는 길을 가지 말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다.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가는 길은 이중적인 감정을 들게 만드는 것 같다. 하나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느껴지는 쾌락, 다른 하나는 그만하고 싶으면서도 멈추고 다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고 느껴 브레이크 없는 액셀을 밟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엑셀 끝까지 밟기 직전에 멈춘 듯한 이 작품은, 사고로 죽은 K의 작업실에서 미완결된 주인공들의 존재를 느끼면서 본인도 그중 하나라는 어쩌면 환상 같은 장면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미완결'된 이야기가 이렇게 무섭게 느껴지기는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롭게 생각했다. 비단 소설뿐이 아니겠지 싶다. 내가 했던 모든 것들도 다 완성하며 끝나지 않았다. 못내 아쉬움과 자책감만 남길뿐, 나가오는 새로운 해엔 끝까지 완성해 완결낼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겠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문지혁
기억에 남는 문장은 따로 없었지만 읽었던 내 기억을 기록하고 싶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작품인데, 한 번에 이해를 하긴 쉽지 않았다. 어느 다리를 걸어 다니면서 나눈 대화들, 아야와 주인공이 나눈 사고들, 그 사고가 발생했을 때 느꼈던 그때의 기억과 혹시나 하는 확률 그리고 확률에 확률을 더해했을 나의 선택들. '만약에'라는 단어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계속 내 머릿속에 등장했다. 만약에,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만약에,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만약에, 사건이 일어난 그 버스를 탔으면... 수많은 경우의 수를 따지고 따져 나타난 결과에 누가 이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서 인생사 너무 다양하고 어떻게 진행될지 아무도 모르고 한 치 앞도 몰라, 운명처럼 흐르는 것 같기도 신이 인도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야 말도 안 되는 확률로부터 자유가 되는 것 같다.
아주 환한 날들
백수린
마지막 순서였던 이 작품이, 마지막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백수린 작가님의 에세이 책을 읽었을 때, 조용하지만 따뜻한 글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하는 작가라는 걸 경험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비슷한 느낌이지만, 무심했던 한 사람이 다시 밝은 소리를 갖게 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 것 같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서운 일인지 나에겐 공감이 되는 말이다. 내 마음이지만 그 마음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다 알지 못하기에, 혹시나 들여다보다 떠오르게 될 기억에 대해 원치 않을 사고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그 당시 따가웠던 기억도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여러 번 들여다보면 딱지가 앉고 흉터가 남아 더 이상 눌려도 아프지 않은 내 피부가 되기에 원치 않았던 사고를 만나도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 않았을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이 작품 속, 옥미도 결국에 받아들인 앵무새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나도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 보고 쓰담쓰담해주고 싶다.
<기억에 남는 문장>
그녀는 자리에 앉아 빈 페이지를 펼쳤다. 무언가 쓰고 싶었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강사는 수업시간에 그렇게 말하곤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선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하지만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지. 너무 무서워.
- 235p
그러고 보면 그 시절, 그녀에게는 틀림없이 앵무새가 전부였다. 앵무새에게도 그녀가 전부였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작지만 분명한 놀라움이 그녀의 늙고 지친 몸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번져나갔다. 수 없이 많은 것을 잃어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 236p
작가 노트 ㅣ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너무 무섭고 고통스럽다. 소설을 쓸 때마다 달아나고픈 충동에 휩싸이는 건 소설을 쓰는 일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옥미는 결국 해냈고 그걸 생각하면 아주 작은 불빛이 켜진 것처럼 내게도 용기가 생긴다. 그 용기를 등불 삼아 컴컴한 강물 속 물풀처럼 자라나 있는 슬픔과 고통, 시기심과 비겁함, 자기모순과 기만 따위를 헤치며 또다시 조금씩 앞으로 헤엄쳐나간다. 그 길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어코 환한 쪽으로 고개를 돌릴 것이다.
- 2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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