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세계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한 순간 만들어지기도 하고,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구축되기도 한다던데. 그럼, 나에게도 나만의 세계가 만들어져 있을까? 음... 궁금하다고 물어봐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도돌이표처럼 하는 내 모습이 웃겨 보인다.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갈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각자 어떤 재료들로 그 세계를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쓸데없는 궁금증이라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째 이런 것들이 듣고 싶고 '그렇구나...' 하면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싶은 조그마한 욕심이 있다. 때론, 그 세계가 무언가와 충돌해 부서지기도 하고 다시 새로운 재료들을 발견해 쌓기도 하는 세계가 신기하다. 따로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기에, 그 사람의 속을 파고 또 파야 알 수 있을 것 같은 그 세계의 모습이 사람마다 다르게 보일 것 같아서 탐구하고 싶은 궁금증을 더욱 부추기는 것도 같다.
어떤 이는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해 절대 부서지지 않고 일생을 보내기도 하고, 다른 이는 새로운 충격에 받은 영향으로 세계를 재건축하며 다양한 모습의 세계를 보여주기도 하고, 극단적으로 한 세계에만 거주해 다른 세계를 경험할 기회도 거부하고 자신의 세계가 최고라 믿으며 살아가기도 한다. 이걸 보면, 사람의 인생을 통해 만들어지는 하나의 세계가 다양하다는 사실이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나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재료로 구성되어 있을까? 지금의 세계도 언젠가 어떤 사건을 만나게 되면 변하게 될까? 혹은 충격받아 산산 부서져서 다시 쌓는데 오래 걸릴까? 나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좋았든, 힘들었든 그걸 통해 나 자신이 이 세계에서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잘 살아가지 못할 때에도 잘 살 때도 나의 세계가 무사히 잘 운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책[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은 사실 인스타 피드에서 많이 발견했다. 그리고 제목이 궁금증을 일으키는 내용이라 언젠가 한 번은 읽어야지 했던 생각이 지금에서야 이루어졌다. 제목의 소제목으로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인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책은 이해가 되었는데,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된다. 왜냐하면, 이 책은 여러 가지 소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저자가 그를 통해 느끼게 된 대단함 그리고 파면 팔 수록 데이비드가 쌓은 자신의 세계에서 저지른 잘못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깨닫게 되는 '물고기는 없다'의 의미를 지루하지 않고 반전의 반전을 느낄 수 있게 글의 흐름을 매끄럽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자신이 느끼게 된 삶의 철학(?)을 물 흐르듯 진행되어서 독자도 저자와 같이 이 흐름에 함께 흐를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이 책을 하나의 내용으로 요약할 수가 없다는 것, 여러 가지가 담겼지만 조화롭게 끝맺어간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그간의 과정 가운데 깨달은 것들을 정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이야기하는데, 단단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아가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불안정했던 자신의 세계가 하나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거기서 얻게 되는 깨달음으로 자신의 세계가 안정되어 가는 모습을 보니 나 또한 나의 세계를 볼 수밖에 없었다. '물고기는 없다.'이 말을 저자가 이후 다양한 이들에게 물었던 말이다. 책을 다 읽은 나에게도 '물고기는 없다.'는 이 말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생각의 꼬리를 물어 답해봐야겠다.
기억에 남는 문장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혼돈이라는 막무가내인 힘의 거대한 소용돌이, 그것이야말로 우연히 우리를 만든 것이지 언제라도 우리를 파괴할 힘이라고 말이다.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의 꿈, 우리의 의도, 우리의 가장 고결한 행동도. 절대 잊지 마라." 데크 아래 솔잎들이 쌓인 땅을 가리키며 아버지가 말했다.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더 중요하지는 않아."
_3. 신이 없는 막간극, 55p
유전은 그가 세상을 비춰보는 렌즈가 되어 있었다. 이는 정확히 그가 자신의 물고기들에게서 밝혀내려고 애쓰던 것 - 특징들이 어떻게 대물림되는지, 특정한 물리적 속성들이 진화적 관계에 관한 실마리들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 이었는데, 사람들에게 눈을 돌렸을 때도 그러한 충동을 떨쳐내지 못했던 것 같다.
_4. 꼬리를 좇다, 79p
미지의 생물에게 자신의 깃발을 꽂기 위해 그는 주석 이름표에 그 성스러운 이름을 펀치로 새기고, 그 이름표를 유리단지 속 표본 곁에 담그고 뚜껑을 닫았다. 우주의 또 한 귀퉁이가 포획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마치 전리품처럼 높이, 더 높이 쌓아가며 전시했다. 그가 질소 속으로 끌어다놓은 혼돈의 양이 거의 건물 두 층 높이로 올라갈 때까지.
_5. 유리단지에 담긴 기원, 106p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나는 경악했다. 이거였다. 내 아버지가 즐겨 쓰는 바로 그 비법. 오늘까지도 아버지 책상 위 액자 속에 담겨 있는 바로 그 단어들. 다윈이 외친 투쟁의 권유. 내 아버지와는 다르게 - 반항적이고, 희망과 신념이 가득한 사람으로 - 보였던 데이비드지만, 결국 그에게도 내게 알려줄 새로운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늘 들어왔던 말을 또다시 상기시키는 것밖에는.
장엄함은 존재해. 네가 그걸 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
_7. 파괴되지 않는 것, 128p
어떤가. 그럴듯한가? 그렇지 않으면, 과학적으로 좀 더 논리적인 일은 어류란 내내 우리의 망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_13. 데우스 엑스 마키나, 242p
그 "질서"라는 단어도 생각해보자. 그것은 오르디넴이라는 라틴어에서 왔는데, 이 단어는 베틀에 단정하게 줄지어 선 실의 가닥들을 묘사하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단어는 사람들이 왕이나 장군 혹은 대통령의 지배 아래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은유로 확장되었다. 1700년대에 와서야 이 단어가 자연에 적용되었는데, 그것은 자연에 질서정연한 계급구조가 존재한다는 추정 - 인간이 지어낸 것, 겹쳐놓기, 추측 - 에 따른 것이었다.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 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은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 뒤에는 지배자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_에필로그, 267p

'Book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집 Review : 진은영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0) | 2023.12.01 |
---|---|
Book Review :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2) | 2023.11.30 |
Book Review : 책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1) | 2023.11.23 |
Book Review : 책[고독사 워크숍] (0) | 2023.11.16 |
Book Review : 책[9번의 일] (1) | 2023.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