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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Book Review : 책 [식탁 위의 고백들]

by hyemhyem 2022. 5. 28.

#책 [식탁 위의 고백들] by 이혜미 작가님

 

# 책 선택의 이유
 어쩌다 요리, 음식과 연관된 책을 3~4권 연달아 읽게 되었다. 읽었던 책마다 다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에세이는 제목 그대로 작가님의 고백을 느낄 수 있었다. 독자에게 소개하는 싶은 음식을 요리 하며 작가 스스로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주는 듯했다. 이게 솔직한 고백처럼 느껴져서 작가님 집에 있는 식탁에 앉아서 그 사람의 고백을 듣는 듯했다. 

 

# 책 읽은 후

 이혜미 작가님이 시인이라 그런지 에시이의 많은 부분들이 시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시적인 느낌이 드러나는 표현이 많아 읽는 동안에 시를 읽는 듯했다. 그래서 처음 부분 읽을 때 나에겐 익숙지 않는 표현이라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중간 이후부터는 익숙해져서 편하게 읽게 되었고, 글 중간중간 작가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고백들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었을 때, 식탁 위의 고백들이 내 피부에 더욱이 느껴졌다. 


 많은 요리를 소개해주었지만, 기억보다 마음에 와닿는 챕터가 있다. 마음에 와 닿아서 책을 읽고 난 후, 다시 찾아 읽었을 때 더 마음에  들어와서 차근차근 적어보려고 한다. 

 


은둔자의 파스타

 

"혼자 잠드는 방이야. 다행인 밤이야" 왜 다행이라고 적은 걸까. 시간이 지나 다시 들여다보니 그의 다행은 철저한 혼자됨과 연관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불을 끄고 어둠에 잠길때, 다시 자신을 되찾은 것 같은 다행함. 세상을 향해 산산이 흩어져 있던 존재의 조각들이 다시 퍼즐처럼 맞춰지는 안도감.

은둔이라는 말이 지닌 자발적 외로움, 소중히 닦아 가지기로 한 그리움, 두려움과 쑥스러움 같은 '-움'의 감정이 집약된 말 같아서. '움'이 붙은 말들은 견고하지도 못한 울타리를 친 뒤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아이 같다. 서러움, 부끄러움, 안타까움 같은 말들을 무릎 사이에 껴안고서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으니까요. 안쪽에서 안쪽을 향해 더 깊어지려고 우리는 바깥에서 집으로, 집에서 방으로, 방에서 침대로, 침대에서 이불로, 이불에서 웅크린 품으로, 자신의 품 안에서 눈을 감고 더 비좁은 공간으로 스스로를 구겨 넣는 거죠"

"우리 모두 작은 지붕을 이고 사는 소라게잖아. 펼처놓고 드러내기 어려운 생각들을 껴안고 세계를 향해 잠시 손을 내밀지. 그러다 화들짝 두려워 손을 거두고 자기만의 소라 안으로 도망가는 거야. 절대 벗지 못할 슬픔의 성벽이지"

혼자 잠드는 밤이야. 다행인 밤이야. - 소라게 이야기 부분

 

 식탁 위의 고백들 중, 가장 마음에 느껴지는 대목이다. '은둔'이라는 단어를 보면 나 자신이 떠올려진다. 이 단어에 대한 사회의 시선도 심지어 은둔을 가지고 있는 나 또한 긍정적이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둔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그렇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은둔, 우울, 소위 내향적인 성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더불어 함께 살아갈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답이 정해져 있진 않지만 소라게 이야기를 잠시 읽다 보니 혼자 잠드는 밤에 다행인 밤이라고 이야기하는 소라게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내가 가지고 있던 물음에 소라게의 이야기가 길을 내어주었다.  그래서 이후에도 소라게의 이야기는 순간순간마다 내 마음속에 떠올라 나에게 다행이라고 이야기해줄 것 같다.

 


까눌레라는 진심

내일 구워내기 위해 오늘 미리 반죽을 만들어두는 건 꽤 기대되는 일이기도 하니까. 다음 날을 위한 기약과 유예의 즐거움.

 

무르던 다짐에 형식을 부여하는 온도가 있다. 결심은 마음을 단단히 뭉쳐놓은 말 같아서 까눌레가 구워지는 시간과 비슷하겠다. 차오르다 내려앉은 생각들을 다독이며 오븐의 온도를 낮출 때 까눌레는 조심스러운 두더지처럼 틀 속으로 다시 파고든다. 아직 단단해지기는 이르다는 것처럼.

 

 진심, 난 책 읽는 것에 대해 진심이야. 진심을 담아 말을 할 수 있을까? 읽을 땐 진심으로 하는데, 진득하게 오래가지 않다는 걸 스스로 알기에 진심이라 이야기하기가 민망하다. 취미가 뭐예요? 라고 물으면, 항상 독서요.라고 이야기하지만, 한때는 독서가 취미라고 이야기한 사람이라고 보이지 않게 책을 멀리 두기도 한다. 쓰고 있는 지금도 언제 어떻게 책으로부터 멀어질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독서에 대한 열정이 다시 불붙기를 기다려야겠지만. 무르던 다짐이 단단해질 수 있도록, 온도를 높이는 것처럼. 책에 대한 마음이 단단해져서 읽고 난 후 지나는 것이 아닌, 어느 한 곳에 기록해두는 것. 기록을 통해 나의 다짐이 단단해져서 진심이 되기를 바라본다. 

 


유자와의 겨울 약속

 

상처를 '받는다'는 말이 새삼 이상하게 느껴졌다. 상처는 누가 갑작스럽게 맡겨두고 간 선물인가. 아니면 수신인이 불분명한 반송우편인가.

청을 졸일 때는 냄비의 곁을 지키며 계속 저어줘야 눌러 붙거나 타지 않는다. 이건 유자와 꿀과 레몬에게 하는 약속.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이런 일들을 좋아하는 것 역시 외로워서겠지. 맛과 향과 시간을 엮어가며 세계와 연결되고 싶으니까.

 

 예전엔 유자차를 싫어했다. 유자 특유의 맛과 향의 상큼함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아마도, 상큼함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귀엽고, 깜찍한 표현을 못했기에 유자의 상큼함을 들이지 못했다. 시간을 조금 흐린 뒤, 다시 마셔도 유자차는 특유의 상큼함에 매료되어 종종 찾게 되었다. 이런 상큼함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음을 느낀다. 상처 또한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때 받았던 상처는 정리하고 받아들이기엔 나 자신이 받아들일 여유도 마음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 비슷한 상처가 왔을 때 받아들이고 정리하고 처리할 수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들이 많아지니 나 자신의 품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런 나의 모습,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 

 

손님이 없어 찍어본 사진, 심심하지만 책이 있어 정말 다행인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