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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Book Review : 책 [친밀한 이방인]

by hyemhyem 2022. 11. 4.

#북블로그 #친밀한이방인 #정한아 #장편소설 #문학동네 #안나 #hyemhyem

 

 

책 [친밀한 이방인]
#정한아 #문학동네

 

 살면서 거짓말을 한번이라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단언컨대 그런 사람은 없겠지. 태어나 말을 떼기도 전에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하던데, 거짓말을 왜 하는 걸까.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하는 말이 거짓말이다. 사실인 것처럼 보여야 하는 상황이 살면서 많기에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나에게 사실인 것이 별로이고 창피하고 화나고 원망스럽게 느껴진다면 거짓으로 그 기분을 잠시나마 피하고 싶은 마음. 참으로 내 마음 밑에 있는 원초적인 욕망으로 보인다. 이게 거짓말의 매력인가?

 

 거짓말을 하면서 느껴지는 감정은 양날의 검같다. 책 속 이유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죄의 경중이 다르다는' 말, 죄이지만 무엇이냐에 따라 그 무게는 다르다. 재판 과정에서도 죄의 무게를 어떻게 잴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처럼 거짓말도 경중을 따질 수 있을까. 현실의 사기꾼과 거짓말쟁이는 거짓을 통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거 하나는 가져가던데, 책 [친밀한 이방인]의 이유미는 상대방에게 무언가 가져가기 위해 작정하고 거짓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거짓말의 무게는 어떻게 잴 수 있을까? 참으로 애매하다. 세상엔 착한 거짓말, 하얀 거짓말 등 나쁜 거짓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론 적절할 거짓말이 사실보다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거짓말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기는 어려운 것 같다. 세상이 거짓말보다 나를 더 힘들고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그런데 사람은 세상은 또 거짓말로만 살아가지 않는다. 때론 진심을 담아 전하는 말이 거짓말보다 더 큰 안정감을 줄 수 있기에. 이래서 참 미스터리 하다. 

 

 

 책 [친밀한 이방인]은 쿠팡 플레이 드라마 '안나'의 원작이다. 작가의 말에서도 거짓말쟁이와 사기꾼에게 마음이 끌렸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아마, 거짓말이지만 거짓으로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삶이 평범한 나의 삶보다 짜릿하고 재밌게 보였을 것 같다. 거짓말로 시작해 거짓말로 살아가는 '이유미'의 일기장을 통해 그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게 된 그 배경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준다. 그녀의 부모님, 그녀의 가정환경, 그녀의 학업, 그녀의 주변 사람들 등등 영향을 받았지만, 어째 약간 틀어진 방향으로 그녀는 거짓말을 선택했다. 전면에 이유미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이유미라는 사람에 대해 여러 등장인물이 이야기한다. 그녀의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말하며 그들 나름 자신의 삶 속에서 느낀 것, 깨달은 것을 담담히 전하는 방식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살면서 거짓말을 해보지 않는 사람이 없듯, 거짓을 통해 보이게 된 사실은 그들에게 각자의 깨달음을 주었다. 그 깨달음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약효가 가지 않을까. 마지막까지 읽게 되면서 '이유미'라는 사람을 욕하거나 비난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거짓말 말고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안쓰러운 마음과 거짓말을 통해 들여다본 인간 내면의 가장 밑바닥을 생각했다. 이렇게 나의 가장 밑바닥을 생각하게끔 만드는 책을 읽으면 참으로 생각이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혹, 비슷한 느낌의 책을 추천하자면 정소현 작가의 소설 [너를 닮은 사람]를 추천한다. 

 

 

기억에 남는 문장

 

나는 나의 부정을 낱낱이 읊어댔다. 내가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남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야기를 다 마치자, 그는 쉰 목소리로 내게 뭘 원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 보그, 55p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보호하게 되어 있어요. 어쩔 수 없이 그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상처받지 않는 쪽으로 단련되게 되어 있죠.

- 위조 증명서, 117p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 폐허가 된 길목에서.

- 위조 증명서, 133p

 

언제부터였을까. 그의 반듯함이 나의 난잡함을 드러내고, 그의 여일함이 나의 광기를 불러내고, 그의 밝음이 나의 어둠을 일깨운 것은. 나는 그에게 포섭되는 대신 더 낮은 곳으로 추락했다. 외도는 그 과정의 일부였을 뿐이다.

- 위조 증명서, 135p

 

 


그녀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자신이 원하는 역할을 맡고 싶었다. 그 불가능해 보이는 욕심이 그녀를 자꾸만 무리한 사칭으로 몰고 갔다.

- 노인과 바다, 141p

 

결혼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개입된다. 사랑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자체가 결혼의 동인이 되지는 않는다. 결국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 결혼한다. 그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낯선 사람과 함께 평생 살아가는 일조차 감수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이다.

- 노인과 바다, 148p

 

나와 똑 닮은 아들을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 아이와 나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 그런데 또 너무나 같다는 것. 내가 밀어낸 나 자신이, 그 자국 그대로 튀어나와 순수와 무구의 얼굴로 나를 보는 것. 그 기분을 아십니까. 네, 그게 이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 노인과 바다, 156p

 

진이가 무척 행복해 보였거든요. 사랑하고, 사랑받을 때만 나타나는 빛이 얼굴에서 보였어요. 그런 표정은 지어낼 수가 없는 법이지요. 저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답니다.

- 은신처, 179p

 

 


'오랜 시간 내가 간절히 바란 것은 오직 하나, 진짜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변장과 거짓말을 실제라고 믿는 정신착란에 빠지는 것. 그랬다면 이토록 여러 번 죽음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허상이라도 딛고 설 땅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를 속일 때도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무대이며, 도처의 아름다운 사물들도 결국 소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 제로의 가능태, 236p

 

아마도 그것은 생에 대한 어떤 증오가, 가슴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검고 커다란 구명이, 우리 두 사람 모두 닮은꼴이었기 때문일 거예요.

- 제로의 가능태,  247p

 

나는 늘 거짓말쟁이와 사기꾼들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들이 꾸는 헛된 꿈, 허무맹랑한 욕망이 내 것처럼 달콤하고 쓰렸다. 나는 그들을 안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로 그들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런 착각, 혹은 간극 속에서 이야기를 쓰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야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 작가의 말, 25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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