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Book Review : 책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hyemhyem 2024. 3. 8. 14:30
책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많은 책 중, 처음으로 읽는 책이다. 처음 접하는 만큼, 꽤나 두꺼운 양이라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은 하루키 작가에게 해당되지 않을 정도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책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읽었다. 중간마다 책의 제목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 유추해 보면서 생각을 더하며 읽다 보니 읽는 재미가 배가 되었다. 이 책 이후로, 하루키 작가의 다른 책들을 천천히 읽어보고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글로 기록하는 글을 좀 더 올려보기로 정했다.

 

 책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3부로 구성된 장편소설로, 제목에 나타난 '도시' 그 안에 '불확실한 벽'을 중심으로 주인공이 도시 안과 밖을 경험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을 담고 있다. 1부는 주인공은 어릴 때 만난 소녀를 찾기 위해 도시 안에 들어오게 되지만, 자신이 알던 도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과 사람들의 행동에 의아했지만 점차 적응하며 살게 된다. 이후 자신이 버린 그림자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도시 탈출 계획을 세웠으나, 도시에 남겠다는 결정을 하며 그림자와는 이별하게 된다. 2부는 다시 눈을 뜬 곳은 이전에 살던 세계로 다시 이 세계에 적응하면서도 그 도시가 계속 맴돌게 된다. 한 도서관에 취직하며 자신을 맴도는 그 도시의 비밀을 여러 곳에서 알게 된다. 우연히 만난 한 소년의 부탁으로 다시금 그 도시로 가게 되는데. 3부에선 다시 돌아간 그 도시에서 또다시 원래 현실 세계로 주인공만 돌아오게 된다. 

 

 1~3부 통틀어 간단하게 말하자면, 현실 - 도시 - 현실 - 도시 - 현실로 왔다갔다 하지만, 그 속 내용을 파헤쳐 보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 안의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자도, 감정도, 시간도 없이 주어진 일을 매일 매일 반복하여 해내는 기계식의 삶에 적응해 살고 있다면  도시 밖의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자도, 감정도, 시간도 있으며 원래 현실 세계를 살아간다. 도시 밖의 생활이 읽는 우리로 하여금 정상적인 생활이라 느껴지지만, 이 세계와 맞지 않는 인물은 꼭 있다. 그게 2부에 등장한 옐로 서브 마린 옷을 입은 한 소년이다. 정상적인 도시라고 대다수가 생각해도 그 세계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 오히려 그 소년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이야기만 듣고 그 도시가 자신에게 잘 맞고 잘 살 수 있는 세계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도 그 도시로 간절한 마음으로 가게 된 이후, 잘 살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각 사람마다 잘 살 수 있고 잘 적응할 수 있는 각자의 세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각자의 세계관에 따라 살 수 있는 세계는 도시는 다르다는 걸, 그 세계가 남들의 눈에는 좋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도시를 둘러싸인 불확실한 벽, 때로 이 벽이 자신의 모습을 날마다 조금씩 변하며 불확실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런 도시 안에선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고, 어떤 시간도 감지할 수 없고, 심지어 자신의 그림자도 함께 있을 수 없다. 회색 빛이 감도는 도시 같으면서도, 하나 있는 도서관에서는 오래된 꿈이 있다. 주인공의 그림자의 추측으로 오래된 꿈은 실제 현체의 잔향을 담아 놓고 나오지 못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들어 소멸하게해 이 도시가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게 아닐까 의문을 던진다. 나는 왠지 이 도시가 각 사람의 내면의 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내면, 또는 의식의 이면 아래에 나도 모르게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 등 나 이외의 또 다른 내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게 하나의 세계요, 하나의 도시이며 둘러싼 벽이 또 다른 내가 되어서 의식의 흐름 속에서 그 모습을 바꾸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와 불확실한 벽으로 SF소설, 판타지 같은 내용처럼 1차원적으로 느껴지지만, 결국에 작가는 각 사람마다 존재하는 또 다른 나라는 무의식한 내면 세계나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고유한 세계관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참으로 많은 추측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 [도시와 불확실한 벽]이었다.

 

 

 

기억에 남는 문장

1부

 

"도시는 높은 벽에 둘러싸여 있어서 들어가기가 무척 어려워." 너는 말한다. "나가기는 더 어렵고."

"어떻게 하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냥 원하면 돼.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그사이 많은 것을 버려야 할지도 몰라. 너에게 소중한 것을. 그래도 포기하지 마.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도시가 사라질 일은 없으니까."

_15p

 

너에게 꿈이란 현실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과 거의 동급이었고, 간단히 잊히거나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꿈은 너에게 많은 것을 전달해주는, 귀중한 마음의 수원 같은 것이었다.

_43p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 거기 있던 게 결코 사람이 봐서는 안 되는 세계의 광경이었다는 걸세.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구나 자기 안에 품고 있는 세계이기도 하지. 내 안에도 있고, 자네 안에도 있어. 그럼에도 역시, 사람이 봐서는 안되는 광경이라네. 그렇기에 우리는 태반이 눈을 감은 채로 인생을 보내는 셈이고."

_102p

 

"오래된 꿈이란, 이 도시가 성립하기 위해 벽 바깥으로 추방당한 본체가 남겨놓은 마음의 잔향 같은 것 아닐까요. 본체를 추방하더라도 송두리째 모조리 들어낼 순 없고, 아무래도 뒤에 남는 게 있어요. 그 잔재들을 모아 오래된 꿈이라는 특별한 용기에 단단히 가둔 겁니다."

"마음의 잔향?"

"마음의 씨앗?"

"그래도. 사람이 품은 갖가지 종류의 감정이죠. 슬품, 망설임, 질투, 두려움, 고뇌, 절망, 의심, 미움, 곤혹, 오뇌, 회의, 자기연민...... 그리고 꿈, 사랑, 이 도시에서 그런 감정은 무용한 것, 오히려 해로운 것이죠. 이른바 역병의 씨앗 같은 겁니다."

"역병의 씨앗."

"아무리 단단히 갇혀 있어도 존재 자체가 위협이니까요. 그것들이 어떤 계기로 힘을 얻어 일제히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 - 그게 이 도시의 잠재적 공포가 아닐까요. 만약 그런 사태가 빚어지면 도시는 순식간에 와해될 테죠. 그렇기에 도도욱 그들의 힘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고 소멸시키고 싶은 겁니다. 누군가가 오래된 꿈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꿈을 같이 꿔줌으로써 잠재된 열량이 달래진다 - 그들은 아마 그런 걸 원하는 거겠죠. 그리고 그럴 수 있는 건 지금이로선 당신 한 사람뿐이에요."

_177p

 

2부

 

 

나는 그저 이 현실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낄 뿐이다. 이 장소의 공기가 내 호흡기에 맞지 않는다, 라고 바꿔 말해도 될 정도로.

_228p

 

"'사람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래야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네, 이해하시겠습니까? 인간이란 숨결처럼 덧없는 존재고, 살면서 영위하는 나날도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_358p

 

믿는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강하고 깊게 믿을 수 있으면 나아갈 길은 절로 뚜렷해집니다. 그럼으로써 이다음에 올 격렬한 낙하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혹은 그 충격을 크게 누그러뜨리거나요.

_452p

 

소년은 이 현실세계와 마음이 이어져 있지 않다. 이 세계에 진정한 의미로는 뿌리내리지 않은 것이다. 임시로 매어둔 기구 같은 존재. 지상에서 살짝 떠오른 상태로 살고 있다. 그리고 주위의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그러니 매어둔 고리를 풀고 이 세계를 영원히 떠나버리는 일에 고통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_535p

 

가르시아 마르케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콜롬비아의 소설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러럼.

_684p

 

3부

 

"아마 낙하를 막을 방법은 찾을 수 없겠죠. 하지만 치명적인 결과를 피할 방법이 없진 않아요."

"믿는 겁니다."

"누군가가 땅에서 당신을 받아주리란 것을요.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겁니다. 보류하지 않고, 온전히, 무조건적으로."

_744p

 

"그렇습니다. 그림자와 본체는 아마 서로 교체되기도 할 겁니다. 역할을 교환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본체가 됐던 그림자가 됐건, 당신은 당신입니다. 그 사실은 틀림이 없어요. 어느 쪽이 본체고 어느 쪽이 그림자인가를 따지기보다, 각자 서로의 소중한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오히려 맞을지도 몰라요."

_751p

 

"마음으로 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소년은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고했다. "이 방의 이 작은 촛불이 꺼지기 전에 마음으로 그렇게 원하고, 그대로 단숨에 불을 끄면 돼요. 힘차게 한 번 불어서. 그러면 다음 순간, 당신은 이미 바깥세계로 이동해 있을 겁니다. 간단해요. 당신의 마음은 하늘을 나는 새와 같습니다. 높은 벽도 당신 마음의 날갯짓을 막을 수 없습니다. 지난번처럼 굳이 그 웅덩이까지 찾아가 몸을 던질 필요로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분신이 그 용감한 낙하를 바깥세계에서 안전하게 받아줄 거라고, 진심으로 믿으면 됩니다."

_754p

 

 

요컨대 진실이란 것은 일정한 어떤 정지 속이 아니라, 부단히 이행 = 이동하는 형체 안에 있다. 그게 이야기라는 것의 진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다.

_작가 후기, 76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