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는 문장이 노래로도 책으로도 단순한 하나의 문장으로 자주 사용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맞는 말인데, 다른 한편으론 이 세상에 영원한 게 없다는 게 씁쓸하게 다가온다. 사람도 언젠가는 죽어 사라지고, 어떤 물건도 언젠가는 먼지로 사라지는데, 사람 간에 느끼는 감정도 언젠가는 희미해지고 사라진다는 몸으로 깨닫는 진실은 세월이 가면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는 단순한 사실이 되어가는 거 아닐까. 그럼, 영원한 건 없지만 사라진 이후에 무엇이 계속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걸까? 부부간의 사랑도 3년이 지나면 희미지해지고 정으로 산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정'이 '사랑'보다 오래 살아남고 오래 진하게 마음에 남아있는 걸까? 관련된 질문을 던져봐도 돌아오는 답변엔 직접 경험을 해봐야, 알 수 있다는 다소 김 빠진 말들이었다. 경험해 봐야만 알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경험한 이들이 헤어지거나 지지리 싸우는 일상을 살지 않을 텐데 말이다.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다면, 해볼 수 있는 때가 있겠지 하면서도 더 이상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된다는 것이 조금은 쓸쓸한 때를 지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책[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폴'이라는 여성이 두 남자 사이의 사랑 가운데 '사랑이란?'를 고민하는 이야기로 나는 읽었다. 자신보다 연상인 로제와 연인관계이지만 자신을 홀로 두며 외롭게 만들고, 아주 연하인 시몽에게는 자신만을 바라보는 열렬한 사랑을 받으며 사랑받는 여자라 느끼는 폴. 이 사이를 오가며 느끼는 폴의 감정과 생각이 문장으로 쭉 내보이면서 자세히 묘사하는 방식이 책을 술술 읽게 만들었다. 폴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서술되니, 나중엔 로제와 시몽 사이에 있는 폴이 둘 다 만나지 않고 자유로운 자신을 위해 이들과의 관계에서 떠나기를 바랐다. 그런데, 현실적인 결말을 마주하니 허무하지만 한편으로 이해가 되었다. 아닌 것 같지만, 끊어내지는 못하는 애매한 감정과 관계들이 폴의 마음 가운데 더 큰 비중으로 남아 있어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선택이 좋은 선택이라고 선뜻 말하기 어려웠다. 마지막 해설 편에서 작가 사강에게 사랑을 믿느냐에 질문에 사랑보단 열정을, 사랑은 3년을 가지 못한다는 그녀의 말에 이 책의 결말을 더욱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이란?' 이 문장을 이 책에선 신성한 느낌보다 우리 현실에서 똑바로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문장
그녀는 소지품을 꼼꼼하게 정돈한 다음 침대 위에 앉았다.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오늘밤도 혼자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 역시 그녀에게는, 사람이 잔 흔적이 없는 침대 속에서, 오랜 병이라도 앓은 것처럼 무기력한 평온 속에서 보내야 하는 외로운 밤들의 긴 연속처럼 여겨졌다. 침대 속에서 그녀는 마치 누군가의 따뜻한 옆구리를 만질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본능적으로 한쪽 팔을 뻗었고, 누군가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듯이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남자든 아이든, 누구든 상관없었다. 그녀를 필요로 하는 이, 잠들고 깨는 데 그녀의 온기를 필요로 하는 이라면,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_1장, 17p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그는 말을 멈추고는 포도주를 한 모금 길게 마셨다. 폴은 반박하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선고로군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가장 지독한 형벌이죠. 저로서는 그보다 더 나쁜 것, 그보다 더 피할 수 없는 것을 달리 모르겠습니다. 제겐 그보다 더 두려운 게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어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때때로 고함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나는 두려워, 나는 겁이 나, 나를 사랑해줘 하고 말입니다."
"저 역시 그래요." 그녀는 의지와는 달리 속내를 털어놓았다.
_4강, 43p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당신이 오실지 안 오실지 확신할 수 없었답니다.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당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제겐 큰 상관이 없어요." 시몽이 말했다.
"교외는 어땠나요?"
시몽은 깜짝 놀라는 듯한 시선으로 폴을 바라보았다.
"당신 집에 전화를 했었어요. 당신에게, 그러니까...... 초대에 응한다고 말하려고요."
"저는 당신이 전화해서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혹은 전화조차 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해서 교외로 나간 거랍니다." 시몽이 대답했다.
_6강, 59p
'남자들은 뻔뻔스러운 데가 있어.' 폴은 별다른 유감없이 생각했다. '날 완전히 믿는다니. 완전히 믿는 나머지 날 속이고 혼자 내버려 두다니. 하지만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 참 대단해.'
_7강, 71p
"나는 그걸 문제 삼고 있는 게 아냐. 오히려 당신이 그것을 문제 삼지 않게 하려는 거야. 당신은 당연히 내게 그런 일을 감추고 싶겠지. 하지만 내게 그런 걸 감출 필요가 없어. 나는 어린애가 아냐, 폴. 내게는 당신을 이해할 능력도, 당신을 도울 능력도 있어. 알다시피 난 지금 당신과 함께 있어서 무척 행복해.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 이상이야. 난 당신도 나와 함께 있어서 해애복했으면 좋겠어. 지금 당신은 행복해지기에는 지나치게 로제에게 집착하고 있어. 당신은 우리의 사랑을 우연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그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해. 내가 그렇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_15장, 132p
"시몽, 시몽." 그런 다음 그녀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이렇게 덧붙였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하지만 시몽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는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층계를 달려 내려갔다. 마치 기쁨에 뛰노는 사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고 거기에 몸을 기댔다.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그녀는 로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_18강, 15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