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 책[9번의 일]
책 [9번의 일]
카페 알바로 경제 활동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뚜렷한 직업은 없는 나에게 일과 직업은 내 머리를 아프게 만든다. 인간은 태어나 거치는 생애주기가 있다고 배웠는데 어째서 대부분이 가는 그 길을 나는 벗어나 구불구불 걷기 힘든 길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을 뿐이다. 과거엔 되고 싶은 직업도 모습도 많았고 뚜렷했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시야가 뿌해져 흐릿해지고 다가오는 현재, 미래를 타격 없이 잘 방어하기만을 바라는 것 같다. 혹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유튜브에 끄적이며 검색하면, 친분은 없지만 비슷한 이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물론 뉴스나 기사 일부에서 숫자, 수치로 알게 되니 공감 능력은 부족한 AI가 말해주는 것 같아 큰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지금의 시대가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도전하기엔 마음의 여유도 부족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다가오는 내일의 걱정이 한 상자에 담겨 움직이는 내 발목에 매달려 있는 5kg짜리 모래주머니 같다. 그럼에도 아주 못 걸을 정도는 아닌 모래 무게에 주저앉아 신세 한탄하며 엉엉 울고 있기에 현실은 답답하니 한 발걸음이라도 떼어낼 수 있도록 심호흡 여러 번 하며 스스로를 토닥일 수밖에 없는 게 또 현실. 혹여,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위로를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잘 해낼 수 있다고, 잘 해내라고 말 한마디 전해주세요.
인간은 왜 일을 해야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음... 살기 위해서?'란 답이 제일 처음 나온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 생존 때문에 일을 하는 걸까? 옛날 옛적에는 어떻게 인간은 살았을까 생각하면, 그때도 일을 많이 했겠네. 어느 책엔 인간은 놀기 위해 태어났다는 둥 하루에 4~6시간 정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유희하며 살 수 있다는 둥 일하는 사람에 대한 책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런 주장은 실현되지 못하고 책으로만 남게 되었는지 너무 아쉽다. 책[9번의 일]은 일과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거부하면서 점차 회사는 그를 점점 오지로 밀어 넣는다. 주인공이 점차 구석으로 밀려나가면서 느끼게 되는 자신의 현실과 그를 이렇게 만든 회사로부터 이름을 빼앗기고 숫자로 불리는 감정 없는 기계로 변하게 된다.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의 선택과 상황이 소설의 진행보다 극단적이게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를 통해 작가가 강하게 자신의 뜻을 전하고 싶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말속에도 일을 하면서 이 일이 자신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이 말이 일을 할 땐 우린 전혀 알지 못하는데 퇴근 후나 퇴사를 하며 자신이 했던 일을 돌아봤을 때 알게 된다. '내가 했던 일이 나를 이런 식으로 바꿔놓았구나.' 그게 긍정이든 부정이든 간에 영향을 준다는 것.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걸 차즘 알게 되었을 때, 멈추고 다른 일을 찾았으면 어땠을까? 주인공도 이걸 알았다. 알고 후회했다. 자신이 이 일로 인해 잃게 되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멈추지 못하고 계속 자신을 몰아갔음을. 이 상황을 보는 독자 입장에서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기에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생을 나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기억에 남는 문장
그러나 그것이 동의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사적인 형편을 무기 삼아 상대의 마음을 쥐고 흔들려는 부장에게 불쾌함을 느꼈다. 그런 식으로 상대방의 입을 막아버리고 꼼짝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려는 의도가 괘씸해서였다.
-62p
만족스러운 삶. 행복한 일상. 완벽한 하루. 그런 것들을 욕심내어본 적은 없었다. 만족과 행복, 완벽함과 충만함 같은 것들은 언제는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짧은 순간 속에만 머무는 것이었고, 지나고 나면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것에 불과했다. 삶의 대부분은 만족과 행복 같은 단어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그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쌓여 비로소 삶이라고 할 만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고 그는 믿었다.
-113p
이봐요. 나도 내 일은 잘하는 사람이에요. 상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했다고요. 표창장을 몇 개나 받았는지 셀 수도 없어. 나도 노하우라는 게 있고 기술이라는 게 있어요. 근데 여기 와서 아무것도 할 줄도 모르는 바보 천치 등신이 됐어요. 그게 왜 내 탓이야? 그게 내 잘못이에요? 바보 천치 등신이 되라고 사람을 이런 곳에다 처넣은 인간들 잘못 아니에요?
-170p
감정이라고 할 만한 건 느껴지지 않았다. 고요히 차오르고 일렁거리며 자신에게로 혹인 타인에게로 흐르던 마음의 움직임 같은 것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그만두었다. 뭔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나 가능성마저 폐기하고 나자 내내 마음속에 들끊던 감정들도 잦아들었다.
-175p
희한하지. 일이라는 게. 한번 손에 익고 나면 바꾸기가 쉽지가 않아. 어디, 일이라는 게, 일만 하는 법인가. 사람도 만나고 세상도 배우고 하는 거지. 요즘은 이렇게 무릎이 아프고 보니 다른 걸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네만 모를 일이지.
-180p
아직 젊은 편이라 다른 일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요.
그는 다만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3번은 다른 일은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뭔가 새로 배우고 준비할 만한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가. 돈이 없다고 했다가, 실은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지 오래됐다고 중얼거렸다.
-179p
생각해보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였다. 다른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순간들이, 삶을 다른 방향으로 놓아둘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번번이 그것들을 그냥 흘려보냈다. 스스로에게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자신을 막아서기만 했다. 어떻게 해도 달리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럼에도 아주 작은 것 하나쯤은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두 가지 마음이 들끊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둔 걸지도 몰랐다.
-223p
오랫동안 그에게 회사는 시간을 나눠 가지고 추억과 기억을 공유한 분명한 어떤 실체에 가까웠다. 그의 하루이자 일상이었고 삶이라고 불러도 좋았다. 친구이자 동료였고 가족이었으며 또 다른 자신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일부이지 전부였던 것.
-229p
한수가 자신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지만 더는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매일 자신이 어떤 심정으로 실체도 없는 회사를 대면하고 있는지. 그런 것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적도 없었다. 스스로의 바닥을 확인하고 매일 그것을 갱신해야만 가능해지는 이런 싸움을 누군가에게 이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243p
#작가의말
일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혹인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 둘 사이를 채운 어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한 설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뭔가를 쓰는 일이 나를 어떻게, 얼마나 바꿔놓을지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