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 책 [당신 생각하느라 꽃을 피웠을 뿐이에요]
# 시집 [당신 생각하느라 꽃을 피웠을 뿐이에요] by 나태주
# 책 선택 이유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할 땐, 에세이나 소설 가끔 인문/사회 분야 쪽으로 가서 살펴본다. 스스로를 완전한 문과인이라고 여기고 있어서 과학 분야나 이과적인 성향의 책을 읽기가 망설여진다. 잘 모르는 내용이라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어려워지면 읽고 싶어지는 궁금증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분야 외에도 손대기 망설여지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시'이다. 시라면 어릴 때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다였기에 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시를 읽고 생각해보거나 머릿속에서 그 뜻이 무엇일까 음미하는 것을 못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시집은 시인들을 알아서 읽기보다, 읽어보고 싶은데 나태주 시인의 시집이기에 어떤 시를 담아놓으셨을까 하는 호기심의 마음으로 선택해 읽게 되었다.
# 책을 읽고 난 후
읽는 내내 엄청난 감동이라든가 큰 영감을 얻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는 못했지만, 읽는 동안만큼은 편한 마음으로 편한 자세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소리를 내서 읽으니 단어 하나하나가 서로에게 맞춰져 있어 부드럽게 소리 내어지니 한 편의 짧은 노래를 부르는 듯, 매끄럽게 이어졌다. 이 느낌이 굉장히 내 마음에 들었다. 읽는 동안에 다시 보고 싶은 시 몇 편을 적으면서 그때 느낀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자 한다.
요즘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시를 적었다. 가족, 자신, 만족, 욕심, 인생 등등 단순하지만 한번 생각하면 심오해 보이는 것들이다. 나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오래전부터 고민했었다. 물론, 지금도 고민이다. 큰 일 없는 작고 작은 인생이지만 앞으로 나의 인생의 방향을 어디로 둬야 할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이러한 생각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왜 그렇게 머리 아픈 생각에 집중하느냐 한다. 그럼 나만 이렇게 심각한 것인가 싶어 스스로에 대해 고민한다. 난 참 생각이 많구나. 많은 생각이 정리가 안되는데 생각만 많아 스스로 내 인생을 꼬이게 하는 걸까. 자기 팔자 자기가 꼰다는 말인가. 그래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놓고 싶지는 않다. 때론 이 고민이 삶의 원동력이 될 때도 있고 삶을 불행하게 만들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고민을 안고 갈려고 한다.
딴 길로 샌 거 가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 위의 시에게 감사하다. 덕분에 자주는 아니겠지만 종종 이 시들이 생각나 다시 읽게 되었을 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것 같다.
# 오늘의 추천 시
오늘의 약속 - 나태주
덩치 큰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조그만 이야기, 가변운 이이기만 하기로 해요
아침에 일어나 낯선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든지
길을 가다 담장 너머 아이들 떠들며 노는 소리가 들려 잠시 발을 멈췄다든지
매미 소리가 하늘 속으로 강물을 만들며 흘러가는 것을 문득 느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지나간 밤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든지
하루 종일 보고픈 마음이 떠나지 않아 가슴이 뻐근했다든지
모처럼 개인 밤하늘 사이로 별 하나 찾아내어 숨겨놓은 소원을 빌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실은 우리들 이야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은 걸 우리는 잘 알아요
그래요, 우리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오래 헤어져 살면서도 스스로
행복해지기로 해요
그게 오늘의 약속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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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 - 달라이 라마의 충고
탐욕의 반대는 무욕이 아니라
만족입니다.
그것도 자기에게 잠시
머물렸던 것들에 대한
만족입니다.
부디 만족하십시오.
당신이 가진 것들에 만족하십시오
작은 일에 만족하고
오래된 인연에 만족하고
낡은 물건에 만족하십시오.
오늘의 한국인
부유한 거 분명 맞습니다.
그러나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것들에
만족하기만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은 행복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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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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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집 - 나태주
떠날 때 어둑했던 우리 집
우울하고 따분해 보이던
가족들 얼굴
모처럼 돌아와 보니
우리 집은 밝은 집이었고
가족들 얼굴 또한 모두가
반짝이는 얼굴이었네
왜 그런지 그 까닭을 나는
말로는 다 설명하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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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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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위한 예의 - 나태주
나무한테 찡그린 얼굴로 인사하지 마세요
나무한테 화낸 목소리로 말을 걸지 마세요
나무는 꾸중 들을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답니다
나무는 화낼만한 일을 조금도 하지 않았답니다
나무네 가족의 가훈은 '정직과 실천'입니다
그리고 '기다림'이기도 합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싹을 내밀고 꽃을 피우고 또 열매 맺어 가을을 맞고
겨울이면 옷을 벗어버린 채 서서 봄을 기다릴 따름이지요
나무의 집은 하늘이고 땅이에요
그건 나무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때부터의 기인 역사이지요
그 무엇도 욕심껏 가지는 일이 없고 모아두는 일도 없답니다
있는 것만큼 고마워하고 받은 만큼 덜어낼 줄 안답니다
나무한테 속상한 얼굴을 보여주지 마세요
나무한테 어두운 목소리로 투정하지 마세요
그건 나무한테 하는 예의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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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시 - 아들에게 딸에게/나태주
아들아 딸아, 지구라는 별에서 너희들
애비로 만난 행운을 감사한다
애비의 삶 길고 가느른 강물이었다
약관의 나이, 문학에의 꿈을 품고 교직에 들어와
43년 넘게 밥을 벌어먹고 살았으며
시인 교장이란 말을 들을 때가 가장 좋은 시절이었지 싶다
그 무엇보다도 한 사람 시인으로 기억되기를 희망한다
우렁차고 커다란 소리를 내는 악기보다는 조그맣고 고운 소리를 내는 악기이고 싶었다
아들아, 이후에도 애비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거든
함부로 대하지 않기를 부탁한다
딸아, 네가 나서서 애비의 글이나 인생을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작품은 내가 숨이 있을 때도 나의 소유가 아니고
내가 지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나의 것이 아니다
저희들끼리 어울려 잘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거라
민들레 홀씨가 되어 날아가든 느티나무가 되든 종소리가 되어 사라지고 말든 내버려 두거라.
인생은 귀한 것이고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란 걸
너희들도 이미 알고 있을 터,
하루하루를 이 세상 첫날처럼 맞이하고
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정리하면서 살 일이다
부디 너희들도 아름다운 지구에서의 날들
잘 지내다 돌아가기를 바란다
이담에 다시 만날지는 나도 잘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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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함부로 주지 말아라 - 나태주
자기를 함부로 주지 말아라
아무것에게나 함부로 맡기지 말아라
술한테 주고 잡담한테 주고 놀이한테
너무 많은 자기를 주지 않았나 돌아다 보아라
가장 나쁜 것은 슬픔한테 절망한테
자기를 맡기는 일이고
더욱 좋지 않은 것은 남을 미워하는 마음에
자기를 던져버리는 일이다
그야말로 그것은 끝장이다
그런 마음들을 거두어들여
기쁨에게 주고 아름다움에게 주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에게 주라
대번에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세상은 젊어지다 못해 어려질 것이고
싱싱해질 것이고 반짝이기 시작할 것이다
자기를 함부로 아무것에다 주지 말아라
부디 무가치하고 무익한 것들에게
자기를 맡기지 말아라
그것은 눈 감은 일이고 악덕이며
인생한테 죄짓는 일이다
가장 아깝고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시간을 자기 자신한테
주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것이 날마다 가장 중요한
삶의 명제요 실천 강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