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Book Rereview : 책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hyemhyem 2022. 9. 20. 19:09

#북블로그 #쓰고싶다쓰고싶지않다 #쓰는마음을매일생각하는사람들의사적인이야기 #유선사출판사

#전고운 #이석원 #이다혜 #이랑 #박정민 #김종관 #백세희 #한은형 #임대형

 

 

책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로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읽은 법이 별로 없다. 물론, 계절에 따라 생각나는 책들이 있다. 봄이 시작할 때쯤, 항상 책[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떠올라 다시 읽어본다. 다시 읽는 이유는 책이 주는 느낌과 분위기와 내용이 삼박자로 어울려 그때의 시간을 떠올려주기 때문이다. 책[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또한, 한 번 읽으면서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과 쌀쌀해진 가을에 읽으면 그 분위기와 감성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읽었을 때, 처음보다 훨씬 진득해진 독서였다. 

 

 책 표지 뒷면엔 '쓰는 마음을 매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적인 이야기',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쓸까?' 두 문장이 있다. 말 그대로다. 글 쓰는 일로 밥벌이를 하는, 9명의 작가님이 글을 쓰는 마음과 더불어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인 사적인 이야기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읽으며 웃었던 부분은 박정민 배우의 '쓰고 싶지 않은 서른두 가지 이유'라는 제목에서, 친절하게 서른두 가지 이유를 이야기하며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을 설명해줬지만, 마지막 그가 계속 글을 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너 쓰지마. 쓰기만 해. 아주 쓰기만 했다 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다. 그 정도로 그의 글을 아주 좋아한다. 또, 백세희 작가님의 '쓰고 싶지 않다'로 두 페이지가 가득 찬 것을 보고 정말 쓰기 싫은 마음이 느껴진다... 했으나 마무리는 그 사이에 '엄청 잘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는 걸 수줍게 이야기하는 게 느껴졌다. 공통적으로 9명의 작가님의 글 쓰기에 대한 마음이 그리고 태도와 자세가 누구보다 진지하다는 것, 글에 대한 사랑이 철학이 가치관이 담아 쓰고 있다는 걸 다시금 생각했다. 그러니 그들의 글을 읽으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거리며 공감할 수밖에. 그리고 잘 쓰고 싶은 마음과 잘 쓰기 위해 쏟는 노력도 느껴졌다. 괜히 글 쓰는 사람들이 아니구나를 다시금 생각했다. 글 쓰기에 진심인 분들을 무슨 수로 이기리. '쓰고 싶지 않다'라고 이야기했지만, 결국엔 이럼에도 불구하고 '쓰고 싶다'로 마무리되는 글쓰기에 대한 이들의 사적인 이야기는 내년 가을이 찾아오면 또 생각나 꺼내 읽어볼 것 같다. 그때까지 독서와 글 쓰기에 대한 나의 마음이 식어지지 않기를, 또 9명의 작가님이 글 쓰기를 멈추시지 않기를 바라면서 마무리해본다.

 

 

 

 

 

 

 

기억에 남는 문장

 

 

내일은 내일의 우아함이
천박함을 가려줄 테니
#전고은

 

 나를 부숴버릴 순 없고, 현실적으로 부숴버릴 수 있는 게 라면밖에 없으니까. 왜 울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제는 지나갔고, 세상에 울 일은 널렸으니까. 

- 25p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쉬운 것에 대한 혐오 자체는 아직도 세상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내가 사랑했던 글과 영화는 거대했기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는 한없이 작고 초라해진다. 사람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자신을 작아지게 만드는 존재는 결국 피하게 된다. 연인이든 친구든 부모든. 그렇다면 본질을 바꿔야 한다. 글과 영화에 대한 거대 판타지를 없애야만 내가 살 수 있다. 계속 사랑을 하려면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인정하고 없애야만 하는 것처럼.

- 40p

 

무차별적인 줄 알았지만 떠오르는 생각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결국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생각이 질서도 없이 마구 떠오르는 것이다.

- 43p

 

나는 결국 아무에게도 상관이 없을 이런 사소한 것을 목격하고 느끼고 생각할 때, 쓰고 싶다. 그런 순간을 만난다면 어떤 압박도 없이 지금처럼 글을 쓰게 된다. 고작 이 짧은 순간을 위해 나는 계속 그 싫은 것들을 견디고 있나 생각하면 지나치게 비실용적인 인간인가 싶지만, 어차피 행복이라는 게 비실용적이다. 누구나 찰나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살 듯이 나도 그러할 뿐.

- 46p

 

 

어느 에세이스트의
최후

#이석원

 

 생각해 보면 어릴 적의 행복이 기쁨과 설렘, 재미 같은 것들이었다면 어른을 행복하게 하는 요소는 감사함과 안도감이 아닐는지. 아이들이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 세상을 헤맬때 어른들은 그저 걱정, 불안, 고통이 없는 상태, 그러니까 자기 전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는 날들을 바라며 추구하는 것이 그들의 행복이 아닐는지.

- 52p

 

 인생이란 게 다 생각하기 나름이고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 아닌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으며, 정말로 행복한 것과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그리 다르지 않다면, 더더욱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닐지.

- 60p

 

 인생은 늘 이렇게 오락가락이다. 어떤 날엔 그 어떤 난리를 쳐도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하겠다가, 어느 날엔 책 한 권 분량을 뚝딱 써냈다가.

 

 언젠가는 죽도록 쓰고 싶었다가 또 어떤 날엔 죽을 만큼 쓰기 싫었다가.- 72p

 

 

쓰지 않는 글은
아직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다

#이다혜

 

 나는 맨날 선배들을 붙들고 물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많이 읽고, 많이 써."

 여기서 질문이 끝나면 초심자가 아니다. 뭘 읽어야 하나요? 뭘 써야 하나요? 어떻게 읽고 써요?

 내가 같은 질문을 반복할 때 선배들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 일도 잦았는데, 이제는 그 얼굴을 이해한다. 본인들도 잘 모른다.- 82p

 

 블로그에 허랑방탕한 글을 잔뜩 썼기 때문에 글이 주는 재미를 알았지 싶다. 쓰고 싶어서 쓰는 글, 닉네임으로 쓰는 글. 가격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글. 그 덕에 '잘 써야 한다'에서 '쓰고 싶다'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87p

 

 

오늘도 춤을 추며 입장합니다,
쓰기 지옥

#이랑

 

 쓸 것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쓴다는 행위를 시작하면 절대 안 된다. 그땐 그야말로 '쓰기 지옥'에 스스로 입장하는 격이다.

- 102p

 

 내가 내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그냥 나는 내 편이 되기로 결심했다. 

 

가족, 친구, 연인. 팬들 모두 나를 영원히 지켜봐 줄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내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나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 113~114p

 

 

 

쓰고 싶지 않은
서른두 가지 이유
#박정민

 

10.

예전부터 내가 가진 전형적인 문과 이미지가 싫었다.(하지만 실제로 문과였다. 때문에 누워서 침 뱉는 격의 문과 비하를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공부벌레, 안경잡이, 못 노는 애 등등의 이미지도 싫었다. 백일장에서 당선이 되는 것보다 축제 때 장기자랑을 하는 잘 노는 친구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그 친구들에게서는 문과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문과 이미지를 버려야 잘 노는 애가 된다는 나의 가설을 충분히 뒷받침해 주는 논거였다. 지금에야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깨달았지만, 사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직도 문과 이미지를 버려야 더 잘 나가는 애가 될 거라는 편협한 시각도 공존하고 있다.

- 126p

 

11.

혼자 메모장에 삐죽이 적어놓은 글들이 훨씬 더 좋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글, 보여줘선 안 될 글, 나조차도 두려워 들춰보기 어려운 그 글들이 더 좋다. 훨씬 더 좋은 글을 두고 결국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이 글을 내놓자니 이 또한 모순이고 타협이다. 역시, 돈을 미리 받지 말았어야 핸다.

- 127p

 

19.

훌륭하지 않아도 글은 쓸 수 있는 거라고 누군가 말했다. 알고 있다. 훌륭해야만 글을 쓸 수 있다면 내가 아는 그 사람은 글을 쓰면 안 되었다. 내가 훌륭하지 않아서 글을 쓰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글이 훌륭하지 않아서 쓰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글이 훌륭하지 않아도 쓸 수 있는 게 글이라고 또 누군가 말한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훌륭한 글을 읽고 싶어 한다. 앞서 말했듯이 수요 없는 공급만큼 외로운 일은 없다니까.

- 132p

 

그러니 혹시라도 가끔씩 박정민의 글이 조금이라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아주 긴밀하고 진정성 있게 속삭여주면 된다. 

 

"너 쓰지마. 쓰기만 해. 아주 쓰기만 했다 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 140p

 

 

꾸며진 이야기
#김종관

 

나는 가장 쓰고 싶지 않은 순간을 쓰고 싶은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허구 속으로 달려간다. 꾸며진 이야기를 좇고 있지만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용돌이치는 하수구를 떠올려야 한다.

- 167p

 

 

무리하기,
(마)무리 하기

#백세희

 

그리고 서점 사장님이 말했다

 "창작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고 하잖아요.(처음 듣는 말이었다.) 물이 끓어서 기체가 되는 것처럼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은 창작물은 아무도 모르는 거 같아요. 중요한 건 계속 끓고 있다는 거죠."

- 188p

 

사장님은 창작이 전무와 전부라고 했고 내게 창작은 무리하기와 마무리하기다. 잘 쓰지 못할까 봐, 인정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쓰기를 미루는 나를 채찍질하며 에너지를 무리하게 소진하고 거기서 오는 불안을 에너지 삼아 결국 마무리해 내는 것. 지금처럼 말이다.

 

작업실 책상 앞에 써둔 글이 있다.

 '아무도 너에게 유려한 글솜씨를 기대하지 않아. 뭔가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솔직함이나 재미를 원하겠지. 네가 글로 세상을 바꿀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잖아.'

 

내가 썼지만 끄덕끄덕. 이 글 좀 까먹지 말자.

그리고 사실 앞에 쓴 무수히 많은 '쓰고 싶지 않다' 사이에는 '엄청 잘 쓰고 싶다'도 숨어있다.

-190p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

#한은형

 

소설을 쓰는 데 오래 걸렸다. 소설이란 아무나 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소설을 많이 읽고, 글을 잘 쓰고, 읽을 만한 문장을 쓴다고 해서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소설을 사랑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었다. 소설을 나만 사랑하나?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인생'에 대한 '태도'라든가 '자세', 그것도 아니라면 '시선'이 있어야 했다. 나는 그것이 있나? 내게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  197p

 

 나, 역시 '나'가 가장 문제다. 얼마 전에 했던 북토크에서 새해 목표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가장 큰 적은 나고, 가장 큰 지지도 나고, 나를 죽이는 것도 나고, 나를 살리는 것도 나라서 나를 잘 돌봐야겠다고, 나를 잘 돌보면 나머지는 저절로 굴러가게 되어 있다고.

- 214p

 

 그렇다. 그러니까 이것은 마음가짐에 관한 이야기다.

 쓰는 일은 결국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강건하고 온유하고, 흔들리되 부러지지는 않는 부드러운 마음. 어느 것에도 지지 않는 신축성 있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 나는 오늘을 산다. 그리고 나를 돌보고 달래는 데 성공해서 지금 이렇게 앉아있다.

 

 쓰는 사람이 될 시간이다.

- 215p

 

 

비극의
영웅

#임대형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타인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였다. 이십대의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친구라고 할 만한 존재와의 교류를 하지 못하고 살았다.  친구를 만드는 것은 나에게 가장 절박하고 중차대한 일이었고, 또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밤마다 신에게 친구를 만들어달라고 기도했지만 신은 나를 독점하려고 했다.

 

결국 나는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을 포기했다. 야비한 질투의 신을 버렸고 더는 기도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선택한 것이 영화였다. 나는 그때 만났던 영화 속 인물들과 실제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기꺼이 내 말벗이 되어주었다. 그들 앞에서 나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그 후로 세월이 훌쩍 지나 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궁극적으로 내 삶의 당위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주는 완전히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나는 신, 혹은 신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절박하게 찾아 헤매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

- 237~238p

 

 

012345

* 유선사 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