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Book Review : 책 [방어가 제철]

hyemhyem 2022. 9. 20. 16:47

#북블로그 #방어가제철 #안윤 #자음과모음 #트리플시리즈 #hyemhyem

 

 

책 [방어가 제철]
#안윤 #자음과모음트리플시리즈

 

  대학 입시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고3 때, 그때의 난 공부보다 친구관계가 더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20대 중후반이 된 지금의 나로 다시 생각해보면, 혜민아... 공부가 더 어려운 거 같기도 해. 라며 고3 때의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어쨌든 그 당시의 난 고등학교를 같이 보낸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이런 이야기를 그 친구에게 말하지 못했었다. 결국에,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표출되었고 이후 잘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 친구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이후 이런 관계가 몇 번 더 반복되어 멀어져 갔다. 나는 인간관계가 넓지도 아는 사람도 많이 않은 사람이다. (나는 나의 인간관계를 스스로 '찐따' 같다며 나에게 모진 말을 했었다. 글로 기록하니 나에게 미안해진다. 미안, 혜민아.) 떠나간 사람, 멀어진 사람과 다시 연락하고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최근에 계속 생각하는 고민이다. 때론, 꿈속에서 멀어진 친구들과 지인들이 나타나 대화를 하거나 아니면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서 있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잠에서 깨면 왜 갑자기 그 친구가 등장했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과거의 추억으로 돌아가게 되고 결국 멀어졌던 그때를 떠올려 끝내 아쉬운 마음으로 생각을 접어둔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 떠나간 인연을 다시 떠오르는 것. 그 끝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아련하고 아쉽고 그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기억들이다.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나온 트리플 시리즈 책 [방어가 제철]는 떠나간 이들에 대한 상실감, 애도의 마음, 아련함, 아쉬움과 그리움을 주제로 3편의 소설이 등장한다. '달밤', '방어가 제철', '만화경' 3편의 소설은 화자가 드러내는 감정은 잔잔한 바다와 같다. 누군가를 떠나보내 슬프고 눈물만 흐르고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텐데, 격한 감정보다 떠나간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 때론 인정하며 따뜻한 감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못하고 남아있는 '나'는 계속 살아가야 하는 현실 가운데 떠나가는 이를 잘 보내며 잘 기억하는 것. 이 과정이 남아있는 사람에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살아있는 사람은 계속 살아야 하니깐. 살아있는 이들이 떠나보낸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내며 기억하는 것, 이것이 진정 애도가 아닐까. 책 [방어가 제철]는 떠나간 이를 보내는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과 애도의 과정을 짧지만 독자에게 전하는 마음의 크기는 글의 길이보다 더 컸다. 읽으며 애도의 과정을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있을 떠나 보낸 이를 어떻게 애도하고 보냈는지 생각하며.   

 

 

기억에 남는 문장

 

「달밤」

 

 그날 후로 한참 동안 언니를 만나지 못했어요. 전화를 걸어도 문자 메시지를 남겨도 연락이 닿지 않았는데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언니는 종종 그렇게 사라지곤 했으니까. 세상에서 흔적을 지워버린 사람처럼 지내다가 어느 날 불쑥 밥 먹을까, 하고 연락해오곤 했으니까요. 그때 난 언니가 본래 그런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왜 더 깊이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까요. 언니를 믿어서, 아니 믿고 싶어서였을까요. 아니, 나 하나 감당하기 벅차서, 비겁한 줄도 모르고 비겁해서 그런 거였겠죠. 

- 14p

 

단 둘이서 긴 대화를 한번 나눠본 적 없었을 때도 그 애가 살아온 내력이 보이더라고요. 노동에 숙련된 몸, 어떤 환경에든 자신을 기꺼이 끼워 맞출 줄 아는 마음 같은 거요. 그건 네가 그런 사람이라서 보이는 거야. 아마도 언니는 그렇게 말하려나요.

- 21p

 

 언니. 사람들이 음식을 정말 많이 남겨요. 설거지도 설거진데 버리는 게 일이에요. 버려지는 음식을 계속 보는 게 이렇게 마음을 힘들게 할 줄은 몰랐어요. 뭐랄까. 너무 쉬워요. 버리고 버려지는 게요.

- 22p

 

살아 있는 나는 이제 뭘 해야 할까. 언니가 없는데, 언니가 스스로 없기를 원했는데 살아 있는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살아 있는 나는, 살아 있으니 살아. 살아서 기억해. 네 몫의 삶이 실은 다른 삶의 여분이라는 걸 똑똑히 기억해. 그렇다고 너무 아끼지도 말고 너무 아까워도 말고, 살아 있는 나를 아끼지 말고 살아.

- 30p

 

 은주 언니. 거기 있어요? 오늘 언니는 내 얼굴 볼 텐데 나는 또 못 보겠네요. 왔으면 서 있지만 말고 앉아서 한술 뜨고 가요. 늘 하던 것처럼 곁에서 천천히 담배도 한 대 태워요. 여기 하늘 좀 올려다보고요. 

- 32p

 


「방어가 제철」

 

 임종은 몇 번인가 아주 가까이 엄마에게 다가왔다가 물러갔다. 나는 그만 엄마가 편안해지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언제까지나 곁에 머물러 있어 주기를 바랐다. 그 두 개의 희망이 내 안에서 같은 무게로 번갈아 가라앉을 때마다, 그 일렁임을 내 삶에 멀미를 일으키고 차라리 절망의 편으로 도주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오늘이 아닌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했다.

- 37p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점점. 느닷없이나 갑자기가 아니라, 점점.

- 59p

 

엄마 앞에 놓여 있었던 수많은 선택과 그럼에도 엄마 맘대로 되지 않았거나 할 수 없었던 일들. 엄마가 떠나야만 했던 어떤 세계. 언젠가 엄마도 술잔을 기울이면서, 나날이 커가는 오빠와 나를 보면서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이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누구나, 그 속을 다 알 수 없는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알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 끝내 알 수 없을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을 알아갈 뿐이다. 어렴풋하게, 아주 더디게.

- 60p

 

내게 공무원 시험은 다른 공시생들처럼 절실한 목표가 아니었다. 그저 정상적인, 제대로 된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얄팍한 치기에 지니지 않았다. 보통의 삶을 사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다.

- 65p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내게 자주 묻곤 했다. 내 인생이 더 떨어질 곳 없는 나락에 다다랐다고 느낄 때마다, 잊고 있던 그 감각이 깊은 밤 잠든 내 가슴과 목을 짓누를 때마다 어디서부터, 대체 어디서부터, 하고 물었다. 숱하게 했던 그 질문이 실은 결코 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이라는 걸, 질문처럼 물음표를 달고 있었지만 사실 한탄이나 체념에 더 가까웠다는 걸 아주 나중에야 깨달았다. 오랫동안 나는 절망을 느끼는 것과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다름을 알지 못했다.

- 66p

 


「만화경」

 

사람들은 흔히 뛸 듯이 기쁜 일이 벌어지거나 기분 좋은 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아요. 일상을 뒤흔드는 큰 불행이나 걱정거리가 없는 상태, 조금은 단조롭게 느껴지는 날들이 행복에 더 가까워요. 

- 96p

 

 뒤늦게 소문을 들은 주변 이웃들은 숙분을 불러 세워 묻곤 했다. 무슨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 것인지 궁금해죽겠다는 눈빛들이었다. 장례식에 사십구재까지 나서서 챙기는 숙분을 수상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2년 남짓 살다 간 세입자에게 집주인이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면 숙분은 대답했다.

 미안하잖아. 그렇게 혼자 가게 한 게.

- 109p

 

 이미리내라는 이름을 알게 된 후 그 이름을 모르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돼버렸다는 것을 나경은 잘 알았다. 서른세 개의 야광별이 뜬 베란다에 서서 조용히, 온전히 흩어지는 희뿌연 연기를 올려다봤다. 미리내가 은하수의 제주 방언이자 용이 사는 시내를 의미한다는 건 검색을 해보고 나서야 알았다. 나경은 또 한 번 미리내, 하고 불러보았다.

- 116p

 

 

01234

*자음과모음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