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 책 [아주 편안한 죽음]
책 [아주 편안한 죽음]
한참 오전 알바를 할 때였다. 빵집 오픈 알바라 이른 시간에 일어나 끝나면, 점심때였다. 이 시간에 주변을 둘러보면, 젊은 사람보다 나이 있으신 어르신 분들이 많이 있던 동네였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노인을 보며, '나는 저렇게 늙고 싶지 않아, 뭔가 불쌍하게 늙고 싶지 않아.' 하며 속으로 생각했었다. 이 말이 얼마나 오만하고 오만했던지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 듦'과 관련된 영상을 접하고 나서 그때 내 생각을 돌이켜 봤다. '아, 나도 결국엔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될 텐데. 인간이라면 모두들 나이가 드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내 미래의 모습을 보고 꺼려했던 지난 생각이 우습게 느껴졌다. 그다음부터 노인에 대한, 나이 듦에 대한 나의 인식이 달라졌다.
인간은 모두들 죽는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어떻게 겪느냐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달라진다. '호상' 이라는 이름, 좋은 죽음이라 말하는 이들에게 처음엔 '죽는 것에 좋은 게 어딨어?' 라며 빈정댔다. 시간이 지나, '호상'이란 말이 떠나간 사람을 대하는 하나의 예의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이전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다. '호상이네, 호상이야.' 란 말이 현실에 남게 된 이들이 떠나간 이에게 보내는 좋은 작별 인사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이 작별 인사를 나도 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내 가족들, 특히 많은 이야기를 해준 나의 어머니에게 그 때가 온다면 좋은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 나와 애증의 관계에 있는 우리 엄마는 참으로 말이 많다. 원체 속으로 무언가를 담지 못하고 밖으로 표출해야 하는 기질을 타고난 엄마는 모든 것들을 큰딸인 나에게 이야기했다. 엄마의 인생 일대기, 남편과의 결혼 생활, 직장 생활 등 했던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걸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나는 엄마에 대해선 박사가 되어버렸다. 바로 '부자 박사님' 학위를 따버린 것이다. (엄마의 이름이 부자이다.)
때론 자세히 알고 싶지 않는 부분까지도 이야기하는 엄마에게 '그런 부분은 나한테 이야기 안 해도 돼.'라고 했지만, 엄마는 '내가 엄마와 대화를 많이 해보지 않았어서, 너희들한테는 나에 대해 많이 알려주고 싶은 것뿐이야~'라며 아주 개인적이고 사적인 내용까지 이야기한다. 그 덕분에 엄마의 이런, 저런 사정을 알게 된 나는 엄마의 일대기를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어릴 땐 이 부분이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의 인생을 알게 되어서 좋다. 현재 엄마의 모습이 과거에서부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되어서, 마치 주마등 스치는 것처럼 그녀의 일대기를 볼 수 있어 좋다.
내가 엄마의 일대기를 아주 자세히 들은 것처럼, 책 [아주 편안한 죽음]의 저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한 달 동안의 일들을 자세히 기록했다. 시몬은 어머니의 일대기를 잘 알았다. 얼마나 많은 대화를 자신의 어머니와 했을까 싶다. 끊겼던 대화를 어머니의 투병 생활 동안 다시금 이어지면서, 시몬은 자신의 어머니를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사랑하지만 대신 병을 짊어질 수 없기에, 병과 싸우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시몬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싸워 이겼으면 좋겠지만, 마음 한 구석엔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시몬의 심정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자신에게 가까운 이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야기하면서 시몬은 이 상황을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 '모든 인간은 죽지만, 이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시몬이 던진 이 물음을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책이었다.
기억에 남는 문장
"전화기가 있는 데까지 가지 못했다면 난 끝장났을 게다."
엄마가 남들에게 들릴 만큼 크게 소리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난 엄마가 느꼈을 절망감을 상상해 보았다. 엄마는 천국이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 쇠약해지고 병에 걸렸는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현세에 무척이나 집착했고, 죽음을 동물적으로 두려워했다. 종종 반복적으로 꾸곤 하는 악몽에 대해 엄마가 동생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누군가 날 쫓아오는 바람에 달리고 또 달리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벽에 부딪히게 돼. 벽을 뛰어넘긴 해야 하는데 그 뒤에 뭐가 있는지 모르잖아. 그래서 난 무서워하지."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건 아니야.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무서운 거지."
_18p
"보다시피 매가리가 풀린 게야. 너무 피곤하고 진이 다 빠져버렸어. 내가 늙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단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며칠이 지나면 일흔여덟이야. 완전히 늙어 버린 셈이지. 그러니 준비를 해야겠구나. 인생의 책장을 한 장 넘기려고 해."
_22p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 거기에서 생명은 어처구니없을 만큼 관성적인 상태로만 연장되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엄마를 살아 있는 존재로 여겨 왔던 나는 언젠가, 그것도 얼마 안 가서 곧 엄마가 죽는 걸 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 엄마의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신화적인 시간의 차원에 속한 것이었다.
_26p
이날 밤 이전까지 내가 느꼈던 슬픔은 모두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슬픔에 잠겨 있을 때조차도 정신을 차린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에 느낀 절망감만큼은 나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안에서 울고 있는 듯했다. 나는 사르트르에게 엄마의 입에 대해, 아침에 본 모습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 입에서 내가 읽어 낸 그 모든 것에 대해 들려주었다. 받아들여지지 못한 탐욕, 비굴함에 가까운 고분고분함, 희망, 비참함, 죽음과 대면해서뿐만 아니라 살아오는 동안 내내 느껴 왔을, 하지만 털어놓지 못했던 고독함에 대해서.
_41p
내게는 권리가 있다.
우리를 짜증나게 했던 이 말은 사실 엄마에게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걸 증명해 보이는 말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엄마의 욕망이 그 자체로는 인정받지 못해 왔다는 걸 보여 주는 말인 셈이었다. 자제력이 없고 때로는 심술궂게 굴던 엄마였지만, 제정신일 때는 조심하는 걸 넘어서 공손하기까지 한 태도를 취했다.
_53p
자기 생각을 스스로 반박해 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주 많은 걸 얻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며 살았던 것이다.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참아 내기 위해 엄마는 온 힘을 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엄마는 유년 시절 내내 규범과 금기라는 갑옷을 두른 채 몸과 마음, 정신을 억압당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끈으로 옭아매도록 교육받았다. 그런 엄마의 내면에는 끓어오르는 피와 불같은 정열을 지닌 한 여인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뒤틀리고 훼손된 끝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낯선 존재가 되어 버린 모습이었다.
_58p
엄마는 우리가 자기 곁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그녀와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다. 눈치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을 타고난 나는 내막을 알아차렸다. 엄마가 아무도 없는 저편에서 홀로 애쓰고 있다는 걸 말이다. 낫고자 하는 집념, 인내심, 용기,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엄마는 기만당하고 있었다. 엄마가 겪는 고통 중 그 무엇 하나도 보상받지 못할 테니 말이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나한테 좋은 거니까.
_80p
나는 죽음을 목전에 둔 이 환자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오랫동안 속에 담아 둔 후회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대화를 나누지 않게 된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다르고, 또 한편으로는 서로 너무나 닮은 탓에 끊어진 대화를 다시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엄마와 대화를 다시 나누게 된 것이다. 엄마가 몇 가지 단순한 말과 행동 속에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낼 수 있게 되면서부터, 완전히 식어 버렸다고 생각했던 엄마를 향한 내 오랜 애정이 되살아났다.
_108p
나는 이들에게 마음속으로 답했다. 당신들 모두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라고. 종교는 나나 어머니 모두에게 죽고 나서 거둘 성공에 대한 희망이 될 수 없었다. 천국에서든 지상에서든 영원불멸하길 꿈꾸는 것은 삶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있어 죽음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_133p
그러나 엄마의 죽음이 늦춰진 결과, 어떤 면에서 우리는 얻은 게 있었다. 그 덕분에 거의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수많은 후회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독자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음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부재로 인해 완전히 소멸하는 동시에 반대로 자신의 현존 덕분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이 세계만큼이나 거대한 존재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는, 우리 삶에서 더 크고 많은 자리를 차지했어야 했던 존재, 극단적인 경우에는 우리 삶 전부에 해당하는 존재로까지 여겨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그가 다른 이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찔함을 자아내는 이 사실을 외면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 한계 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누군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을 비난할 여지가 여전히 남게 된다.
_136p
나를 바로 같은 사람들에게 맡겨 놓지 마라.
이렇게 호소할 수 있는 이가 한 명도 없는 처지에 놓인 모든 사람에 대해 나는 생각했다. 기댈 곳 하나 없이, 무심한 의자들과 과로에 지친 간호사에 의해 좌우되는 일개 환자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느낄 때 그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공포가 엄습할 때 이마에 손을 얹어 줄 이 하나 없을 때, 고통이 휘몰아칠 때 고통을 달래 주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 죽음의 정적을 채우기 위해 거짓말이라도 늘어놓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때 그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말이다.
_137p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태어났기 때문도, 살 만큼 살았기 때문도, 또 늙었기 때문도 아니다. 사람은 무언가로 인해 죽는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엄마가 돌아가실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성 종양이 엄마에게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끔찍한 경악스러움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암, 혈전, 폐울혈과 같은 것들은 공중에서 비행기 엔진이 멈추는 것만큼이나 급작스럽고 예상하기 힘든 사건이다. 꼼짝 못 하는 상태로 죽어 가면서 매 순간이 지닌 무한한 가치를 확인한 그때, 어머니는 희망을 품고 기운을 냈다.
하지만 동시에 어머니의 헛된 노력은 일상의 평범함이 만들어 낸, 불안을 달래 주는 장막을 찢어 버리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_152p

을유문화사로부터 도서제공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